[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경찰 안팎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지만 법무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입법예고기간이 열흘밖에 남지 않았지만 관련 공청회조차 열리지 않는 등 법무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경찰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경찰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제출한 수사권 조정 시행령 입법예고안 수정 요청 의견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고 7일 밝혔다. 법무부는 '국민 의견을 잘 경청하겠다'나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와 같은 원론적인 답변도 없이 "입장을 안 낸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경찰학회·경찰학교육협의회·한국경찰연구학회 등 경찰학계와 참여연대는 지난 4일 수사권 조정 시행령을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7일 수사권 조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안은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 단독주관으로 명시됐으며,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으면 사건을 경찰에 보낼 필요가 없다는 내용과 지방검찰청장에게 수사 개시 여부 판단권을 준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검사의 직접 수사 개시 범위인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에서 경제 범죄에 마약 범죄를, 대형참사에 사이버 범죄를 각각 추가한다는 내용도 반영됐다.
[사진=김아랑 기자] |
이후 경찰 안팎에서는 수사권 조정 시행령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경찰 내부 온라인 게시판인 '폴넷'에서는 시행령 수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피켓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황순철 경감의 "참담한 심정으로 내부망 1인 시위를 시작한다"는 글을 시작으로 입법예고안 수정을 촉구하는 경찰관들의 동참이 연일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경찰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경찰위원회는 지난 4일 이번 시행령과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청와대와 법무부, 행정안전부, 법제처, 국회 등에 발송했다.
경찰학계와 참여연대가 법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기 앞서 지난 2일에는 경찰 공무원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이 가입한 경찰청노조와 국가공무원노동조합(국공노)가 시행령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법치주의에 반하고 검찰개혁이라는 당초 개정 취지에 역행하는 입법예고안에 대한 재고 및 수정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안팎의 지적은 ▲이번 시행령이 법무부 단독주관이라는 점 ▲검사 수사 개시 범위에 마약과 사이버 범죄가 들어간 점 ▲검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으면 사건을 경찰에 보낼 필요가 없다는 점 등이 검찰개혁 취지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입법예고안은 개정법 취지인 검찰개혁에 역행한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와 검사의 직접수사 축소·제한 취지에 맞게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법무부는 요지부동이다. 전문가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 계획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안팎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현재 입법예고안을 강행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반면 경찰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경찰은 남은 입법예고기간 각계 의견을 수렴해서 시행령을 수정한다는 목표이지만 쉽지 않은 분위기다. 법무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사실상 시행령을 수정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 kilroy023@newspim.com |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은 "행정절차법상 행정청은 입법예고기간 중 공청회를 열 수 있고 쟁점이 있는 법안은 통상적으로 의견수렴을 거쳐왔다"며 "법무부 단독주관이라 공청회 개최 여부 또한 법무부 소관으로, 입법예고기간 중 예정된 공청회와 토론회 등이 없는 게 아쉽다"고 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향후 법제처 심사 및 차관·국무회의에서 수사권 개혁에 대한 국민 여론이 반영될 수 있도록 수정 노력 지속하겠다"고 했으나, 현실적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차관급인 경찰청장은 장관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에 들어갈 수 없는 등 발언권이 제한돼 있다.
입법예고기간은 오는 16일까지로 앞으로 열흘 남았다. 법무부는 입법예고기간이 끝나면 관련 시행령을 법제처로 보내 심사를 받는다. 이후 차관회의 심의와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시행령이 확정되고 공포된다. 현재 추진되는 상황만 보면 수사권 조정 시행령은 내년 1월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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