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하청 근로자들이 원청 사업장에서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파업을 벌여도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할 경우 업무방해 또는 퇴거불응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업무방해·퇴거불응 혐의로 기소된 한국수자원공사 하청 근로자 김모 씨 등 5명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우선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한국수자원공사 사업장에서 자신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쟁의행위를 벌였지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이 일해 온 도급인(한국수자원공사)의 사업장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라며 "쟁의행위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파업·태업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한국수자원공사는 피고인들과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근로에 대해 일정한 이익을 누리고 있고, 이를 위해 사업장을 근로의 장소로 제공했다"며 "피고인들의 쟁의행위로 일정 부분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 통념상 이를 용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당성을 갖춘 쟁의행위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이뤄져 법익을 침해한 경우 항상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며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사회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 형법 제20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들이 파업 중 진행된 대체 근로를 저지하기 위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에 대해서도 상당한 범위 내에서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은 "피고인들은 수회에 걸쳐 대체 근로자들이 정당하게 고용된 기존 근로자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도했다"며 "이에 대해 아무런 확인 조치도 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중단된 청소업무 등을 수행하려 하자 이를 제지하기 위한 실력 행사에 나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는 위법한 대체 근로자 투입에 대항하기 위해 상당한 범위 내에서 실력 행사가 이뤄진 정당행위"라며 "소리치는 방식으로 대체 근로자들의 업무를 방해했지만 폭력, 협박 등으로 나아가지 않은 소극적·방어적 행위였다"고 인정했다.
법원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는 1998년부터 용역위탁계약을 통해 수급업체에 시설관리와 청소 등의 업무를 맡겼다. 수급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들은 업체가 변경돼도 그대로 고용이 승계되며 한국수자원공사 사업장에서 계속 일했다.
김 씨 등은 수급업체인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이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전지부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으로 수급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에 나섰지만 결렬되자 파업에 돌입했다.
김 씨를 포함한 30~40명은 2012년 6월 25일에서 7월 3일 사이 총 3일간 한국수자원공사 본관과 연구센터 사이 인도에서 확성기를 틀고 농성을 하거나 집회를 벌였다.
이에 용역업체가 대체 근로자를 투입해 업무를 개시하려 하자 "그만두고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거나, 대체 근로자들이 수거한 쓰레기를 한국수자원공사 본관 건물에 투기하는 등 업무를 방해했다.
1심은 이들의 쟁의행위에 위법성이 있다고 보고 김 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나머지 피고인들도 각각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반면 2심은 피고인들의 집회 등이 한국수자원공사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진 정당행위라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