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서영 기자 =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에티켓은 뭘까. 단연 자신의 '비말'차단이다. 이런 상식이 공유되면서 마스크는 외출 시 챙겨야 할 필수품이 됐다. 그렇다고 마스크가 '최선'은 아니다.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거나 운동 시 호흡곤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또 입이 가려져 있다보니 소통도 원활하지가 않다.
이런 불편을 해결하겠단 생각으로 단 두 달 만에 '마스크 대체재'를 만들어낸 이가 있다. 바로 이기헌 지엘아이엔씨 대표다. "날아오는 비말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비말이 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 생활방역의 핵심"이라고 밝힌 이 대표는, 이 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매너 쉴드'를 개발했다.
발상의 전환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이 대표는 오랜기간 여의도 증권가를 혁신으로 물들였던 증권맨 중 한 사람이다. 그랬던 이 대표가 돌연 제조업계로 뛰어들었다. 2021년 개봉 예정이던 아바타2를 겨냥한 3D 안경을 만들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면서 선택과 집중을 고민했다. 그렇게 '코로나의 여름' 직전, 그는 사람들이 겪을 마스크 속 불편함을 예견하고 매너 쉴드를 개발했다.
실제로 기자가 한 시간 반 동안 매너쉴드를 착용하고 인터뷰했지만 무게감이나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빨리 유행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용감이 편했던 매너쉴드를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지엘아이엔씨를 찾아 들어봤다.
[서울=뉴스핌] 이서영 기자 = 이기헌 지엘아이엔씨 대표가 자신이 제작한 매너쉴드를 가르키며 설명하고 있다. 2020.10.06 jellyfish@newspim.com |
◆ 무게 19g, 30번 닦아 쓰는 김서림 방지 필름, 편안한 호흡은 덤
매너쉴드는 얼굴 전체를 가려주는 투명 필름이다. 김서림 방지 기능이 되는 필름을 안경 테에 고정해 자신의 비말이 분산되는 것을 막아준다. 언뜻 단순해보이지만, 매너쉴드에 대한 이 대표의 자신감은 꽤나 단단했다. 매너쉴드가 탄생하기까지 타사 제품 비교부터 제품 제작까지 그의 시선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매너쉴드를 설명해달라고 하자 이 대표는 해당 제품의 장점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누군가 발견해 놓으면 쉬워 보인다. 하지만 막상 발견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 쉽지 않다. 매너쉴드는 무게감이 없고, 쉴드를 써도 시야가 가리지 않으며 김서림 방지 코팅을 약 30번 정도 닦아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이다."
매너쉴드의 특장점들을 만들어낸 데는 이 대표의 '관찰력'이 한 몫 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에서 생산한 페이스쉴드 제품을 모두 구입해 사용해본 결과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10분 이상 착용하기 불편했고, 쉴드로 인해 눈에 난반사가 일어나 눈이 피로했다"며 "김서림 방지 코팅 역시 타사 제품은 재사용이 안 됐는데, 그러면 생활방역 용품으로서 효용가치가 낮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결국 면밀히 관찰했기 때문에, 착용감과 김서림 방지, 비말 차단까지 확실히 되는 매너쉴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실제로 기자가 한 시간 반가량 착용한 상태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김서림이나 무게감 등으로 인한 불편은 없었다. 오히려, 뜻하지 않은 장점을 발견했다. 바로 핸드폰 '얼굴인식' 기능이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의 절반 이상이 가리기 때문에 얼굴인식이 안 된다. 그러나 매너쉴드는 달랐다.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안면 인식도 가능했다.
현재 이 대표가 만든 매너쉴드를 구매하면 오픈형과 일반형 필름 두 장과 안경 프레임 그리고 부자재들이 들어있다. 우선 쉴드들은 입김을 강하게 불더라도 김이 서리지 않는다. 게다가 약 30번 가량 닦아서 쓸 수 있어 내구성도 좋았다. 타사 페이스 쉴드들은 김서림 방지 코팅이 사라질 것을 염려해 닦아서 재사용하지 말 것을 권한다. 확실한 차별점이다.
또 쉴드가 얼굴에 잘 붙어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고글이다. 해당 고글은 안경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 모두 사용 가능하도록 제작됐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어댑터. 안경을 쓴 사람은 안경 테두리를 고정시킬 수 있는 안경전용 어댑터가 있다. 만약 안경을 쓰지 않는다면 코걸이 어댑터를 끼우면 된다, 이와 함께 운동을 할 때도 매너쉴드가 확실히 고정될 수 있도록 이어후크도 동봉돼 있다.
[서울=뉴스핌] 이서영 기자 = 매너쉴드를 제작한 이기헌 지엘아이엔씨 대표. 2020.10.06 jellyfish@newspim.com |
◆ 증권맨서 제조업 CEO 변신...증권과 제조의 '통섭' 기대
이 대표가 제조업에 뛰어든 지는 약 4년여가 흘렀다. 이 대표는 "여의도에서 제 걸음걸이가 가장 빨랐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였던 만큼 남들과는 다른 증권맨으로서의 '이정표'를 착실히 세워갔다.
자산운용과 기업경영이 큰 틀에선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산경영'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부터, 전세계적인 금융상품으로 자리잡은 MMW(Money Market Wrap)을 미국보다 무려 8년 앞서 고안해냈다.
화려했던 여의도 증권가 삶을 뒤로한 채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있던 원동력은 뭘까. 그는 "앞선 20년 간 열심히 달렸기 때문에, 앞으로 달려나갈 20년의 체력이 길러졌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을 향해 "어떤 일을 시작했다면 다른 것을 기웃거리기보다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며 "최선을 다하다보면 장애물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하게 마련이고 한 번 기웃거리다보면 25년간 기웃거리다 끝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증권가에서 20년간 열심히 일하면서 쌓아둔 인적 네트워크가 이번 매너쉴드 제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벤처캐피털을 통해 쉴드 제작을 맡아줄 '진짜배기' 업체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전 LG디스플레이 제작을 맡았던 업체 사람들을 알게 돼 매너쉴드를 '오차 없이' 제작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 대표는 "증권가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구별해낼 수 있다"며 "하지만 제조업은 나 또한 초보였기 때문에 혼자 발품도 많이 팔아야 했다"고 돌이켰다.
이 대표가 그리는 미래는 사뭇 달랐다. 현실에 무게를 둔 허황되지 않은 꿈이랄까.
"어느 정도 사업이 안정되고 매출이 정상화되면 금융과 제조업을 연결해보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나 같은 제조업과 그 유관업종에 투자하는 VC 등을 연결해, 민간이 직접 나서서 투자와 해외 수출 등에 나서는 일을 해보고 싶다."
제2의 인생을 사는 이 대표. 그는 끝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100세 시대를 산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 27세에 취업한다고 가정하면 25년을 일한 뒤 52세다. 그럼 100세까지 50년 가까이 남은 셈이다. 우리는 결국 75세까지는 일해야 하는 운명이다. 앞으로 남은 25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남아 있는 25년은 축복이 아닌 저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jellyfi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