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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노트] 신세계 정용진의 증여세…백기사 필요하겠다

기사등록 :2020-10-07 06:19

최고 60%에 이르는 상속세 하에서는 경영권 유지 어려워
낯선 외국인 투자자에게 손 벌려야 하는 한국 기업의 현실
전문 경영인 체제 도입했던 일본 '거인의 몰락' 반면교사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추석 연휴 직전 신세계그룹 오너가의 증여 얘기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신세계 그룹에 따르면 이명희 회장이 자녀인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에게 4932억원 상당의 지분을 증여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원을 초과하는 구간에 대해서는 증여세 최고 세율인 50%가 적용된다. 여기에 최대주주가 주식을 증여할 경우에는 20% 할증돼 증여세율이 60%가 된다.

기자 주변에선 "이쯤 되면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들이 나왔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주변에서도 증여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고 50%인 우리나라 증여세율이 새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세번째)와 손경식 경총 회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간담회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0.06 leehs@newspim.com

우리나라 증여세율은 세계 1~2위 수준이다. 일본이 55%로 1위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할증율을 고려하면 60%로 사실상 세계 1위다.

1조원 상당 기업의 지분을 한 번 상속하면 내야 하는 세금이 6000억원에 이른다. 또 한 번 상속을 하면 이론상 남은 지분 가치는 1600억원이다. 경영권 유지가 불가능하다.

OECD 국가 평균 최고세율은 26.6%로 우리의 절반 수준이다. OECD 35개국 중 13개 국가는 아예 상속세나 증여세가 없다.

현재의 상속·증여세 체계가 확립된 것은 20년 전인 2000년이다. 당시 상속세제 개편은 누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이 50억원에서 30억원으로 낮아졌고 적용세율은 45%에서 50%로 높아졌다.

당시 높은 상속세율을 설정한 것은 불투명한 세원을 감안한 것이다. 기업들의 탈세가 횡횡하던 1980~90년대를 지나다 보니 정부가 아예 탈세를 감안해 높게 세율을 잡았다. 특히 소득세는 세원 추적이 어렵다보니 세원이 노출되는 상속시점에 한 번에 세금을 걷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20년 동안 우리 기업 환경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이 높아졌고 국세청의 감시 능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제 상장기업이 탈세로 덜미가 잡혔단 소식은 듣기 어렵다.

높은 상속세율로 인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경영권 유지가 어렵다보니 기업들은 자꾸 궁여지책을 모색하곤 한다.

검찰에 따르면 최근 기소된 삼성전자 경영진은 2015년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을 만나 제일모직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의 매각을 추진했다. 그러면서 버핏에게 '백기사'가 돼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검찰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 기업이 외국의 적대적 투기자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외국인 투자자를 만나 읍소해야 되는 궁색한 처지였다고 볼 수도 있다.

높은 상속세율로 경영권이 위태로워지면, 그래서 궁극적으로 기업 경영진이 한국인에서 외국인으로 대거 교체된다면 우리 경제에 이로울 게 별로 없다.

혹자는 글로벌 시대, 전문 경영인을 잘 두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외국인 CEO가 반도체 공장을 평택에서 미국 텍사스로 이전하지 말란 법이 없다.

상속세율이 높은 일본은 이미 수 십 년 전 오너 경영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됐는데 이후 기업들의 전략실행 능력이 떨어지면서 소니·파나소닉·도시바 등 화려했던 거인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특히 소니의 경우 1994년 전문 경영인이 각 사업부를 독립회사로 세분화 하고 미국식 사외이사를 도입했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높은 상속세율은 필연적으로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가속화 한다. 우리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굳이 뒤쫓을 필요가 있을까.

재계 관계자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은 기업인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의 영속성 측면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한국 경제의 위치를 고려할 때 전 세계 가장 높은 수준의 상속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unup@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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