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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인이 양부에게 보내는 편지

기사등록 : 2021-03-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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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지난 4일 당신의 사랑스런 딸이었던 정인 양 사망 사건 3차 공판이 열렸습니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동문 쪽에는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당신에게 할 말이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은 지난 1·2차 공판 때 당신이 성난 시민들을 피해 법원 청사를 빠져나온 출입구였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정문으로 나오더군요. 또 다시 시민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따라붙은 기자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눈물도 흘렸다고 들었습니다.

이학준 사회문화부 기자

뒤늦게 당신 행방을 안 시민들이 달려갔지만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시민들은 바로 옆 서울남부지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지 못했으니 호송차를 타고 나오는 당신 부인에게라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 부인을 태운 호송차가 나오자 현장은 분노에 찬 시민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사형'이라고 적힌 피켓을 흔들며 한 맺힌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당신 부인, 정인이 양모는 호송차 안에서 그들의 절규를 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신이 왜 시민들을 마주하지 못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으나 몇 가지 짐작은 됩니다. 시민들 앞에서 사죄를 한다면 곧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꼴이 되고,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유죄 심증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라는 여론이 재판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 국민이 당신의 사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건을 심리했던 신혁재 판사는 당신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기 전까지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읽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재판부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판사도 사람인지라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얼마 전 당신이 법원에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들었습니다. 반성문에서 "아이를 지키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내 무책임과 무심함 때문"이라며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사죄하며 살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반복해서 떠올라 너무나 괴롭고 미안하다.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지요.

그러나 재판부에 반성문을 써내고, 언론 앞에서만 사과하는 당신의 진정성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신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4차 공판이 열리는 오는 17일에는 시민들이 정문과 동문 모두 지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는 용기를 좀 내보면 어떨까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지쳐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정인이를 마음으로 입양한 대한민국 부모들 앞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죄를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죄로 인해 본인이 받을 수 있는 피해를 감내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나 재판부를 향한 사죄가 아닌 한때 당신 딸이었던, 눈곱만큼의 시간이라도 당신이 사랑했던 정인이에게 사죄할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hakj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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