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보육원 생활은 제각기 다른 사정으로 시작되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끝납니다. 만 18세 '법적 성인'이 되면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보호종료아동들은 매년 2500~2700명에 달합니다. 이들은 500만~800만원의 자립정착금과 3년간 매달 30만원의 자립수당만으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를 혼자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 18세는 홀로서기를 시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나이입니다. 정부의 지원 역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롯이 혼자라는 외로움, 불안정한 주거와 일자리 등 보호종료아동들이 마주한 현실은 암담할 따름입니다. 이에 뉴스핌은 보호종료아동을 만나 그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보고,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 및 정책의 방향 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15년간의 보육원 생활을 끝내고 24살 때 처음 홀로서기에 나선 신선(29) 씨는 2018년 겨울 보일러가 고장 났던 일을 인생 최대 위기감을 겪었던 날로 기억했다. 물어볼 사람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신선씨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 보일러 버튼을 눌렀더니 보일러에서 나온 물이 멀티탭으로 쏟아졌다"며 "검정 연기가 피어올라 불이 날 것 같은데 119에 전화해야 하는지, 한국전력에 전화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아찔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두꺼비집을 내리고 집주인에게 알려야 한다고 얘기해준 건 대학교 친구였다. 신선씨는 "보육원에 살 때만 해도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 달려와서 해결해줬다"며 "퇴소하고 나니 도움을 요청할 곳 없이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 앞 정동길에서 코로나19로 인해 80일 만에 첫 등교수업을 했던 고3 학생들이 하굣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0.05.20 alwaysame@newspim.com |
보호종료아동들이 혼자라는 외로움과 막막함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보호종료아동들은 일상 곳곳에서 철저히 혼자임을 절감한다. 집을 구할 때도, 불이 날 뻔한 긴박한 상황에도 도와줄 이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 급박하게 준비하는 자립…심리 지원 및 지지 체계는 '빈약'
11일 아동권리보장원이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12월 펴낸 '보호종료아동 지원사업 성과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몇 년에 걸쳐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아동들과 달리, 보호종료아동들은 단시간 동안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립을 준비해야 한다. 보호시설 등에서 생활하던 아동들은 만 18세 이후 법적 성인이 돼 필연적으로 자립이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호종료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선씨는 "29살인 지금도 아직 어린애 같은데 더 어린 나이에 보호종료아동이 돼 자립해야 했을 때는 어른이 되라고 다그치는 것 같아 힘들었다"고 했다.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4년여 만에 보육원을 떠나야 했던 이용호(23) 씨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보육원에서 자립 교육도 받았지만, 막상 보육원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막막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의 보호종료아동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 및 지지 체계는 빈약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상담심리학회와 연계해 보호종료아동을 대상으로 전문심리상담서비스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약 40명이 1인당 10회 한도로 비용 지원을 받았을 뿐, 혜택을 받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외에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자립 준비를 돕기 위해 자립을 먼저 경험한 보호종료아동들의 멘토 역할을 지원하는 바람개비 서포터즈 정도가 사실상 전부다.
◆ 10명 중 1명꼴로 우울·불안 등 심리적 문제 경험
보호종료아동들은 주변의 도움 없이 혼자 일상을 꾸려나가는 일, 취업 준비, 회사생활 등 모든 인생의 단계마다 어려움에 부딪힌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보호종료아동들이 느끼는 막막함이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신선씨는 "자립 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는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며 "취업한 이후에는 잘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회사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굉장히 답답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아동청소년 보호 안전대책 중간점검을 위해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울시아동복지센터를 방문, 현장간담회를 마친뒤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2020.07.13 pangbin@newspim.com |
신선씨뿐 아니라 많은 보호종료아동들은 다양한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복지부가 발간한 '2016 보호종결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보호 종결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 불안 등 심리적인 문제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종료 5년 이내의 아동 1188명 중 10.1%(120명)가 심리적 부담을 보호종료 이후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특히 퇴소 이후 사회로부터 받는 상처가 더해져 심리적 고통이 가중되기도 한다. 신선씨는 "집을 구할 때, 공과금을 낼 때 등 고민이 많을 때 부모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불안감을 느꼈다"며 "그러면서 보육원에서 내가 조금만 더 주체적으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보육원에서 살아서 이렇게 된 걸까, 못난 부모라도 가정의 품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등 후회와 자책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평소 낙천적이란 얘기를 들었던 용호씨 역시 퇴소 1년여 만에 노숙을 시작하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용호씨는 "노숙을 시작한 첫 주에 너무 힘들어서 '내가 갑자기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나처럼 힘든 사람을 왜 이렇게 더 힘들께 할까라는 원망도 들었다"고 했다.
◆ 무엇보다 필요한 건 사회적 네트워크
보호종료아동들이 어려운 순간마다 지지해줄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 자립을 급박하게 준비하다 보니, 별다른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없이 사회로 나올 수밖에 없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원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죽을 때까지 '보호 종료'가 없지만, 시설에서 나온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자립을 강요당한다"며 "보호종료는 아이들에게 그 순간 모든 안전망과 보호망이 끝난다는 사망선고처럼 느껴질 정도로 심리적인 압박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원을 받지만, 보호종료아동들은 그런 기반 자체가 없다"며 "적어도 국가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가족이 생길 때까지 후견인이 돼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자본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소연 아동권리보장원 아동정책평가센터 과장은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네트워크나 사회적 자본은 보호종료 전과 후 모두를 아울러 진행되는 중요한 과업"이라며 "보호종료 전부터 자립을 준비하되 경제적 자립 외에도 사회적 네트워크를 많이 만드는 작업을 보호종료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보호종료아동들이 자립 후 돈을 사용할 때, 집을 얻을 때 의논할 상대들이 생기고 어떤 결정을 할 때 적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얻고 살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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