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율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퇴임 후 첫 공개 행보로 서울시장 사전투표에 나서면서 내년 3월 대선을 염두에 둔 야권 정계 개편에 속도감이 붙을 전망이다.
윤 전 총장은 공식적으로 정계 진출 여부를 알리지 않았지만 차기 대선 주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정치권에선 그의 정계 입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거취는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구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4·7 재보궐선거의 승리로 명실상부 야권 중심이 된 국민의힘은 오는 전당대회에서 그의 등판을 두고 경쟁할 공산이 크다.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은 당내 뚜렷한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을 영입, 대권주자로 만드는 '관리형 당대표'를 어필하고 나섰다.
윤 전 총장은 당초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제3지대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국민의힘이 야권 재편 주도권을 잡으면서 제3지대 입지가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보선 승리로 구심력이 강해진 국민의힘의 목소리가 커진다고 해도 그가 당장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보궐선거 이후 직을 내려놓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제3지대에서 윤 전 총장을 업고 다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2일 서울 오전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2021.04.02 mironj19@newspim.com |
◆ 尹, 퇴임 후 첫 공개 행보로 사전투표...사실상 정치 행보
윤 전 총장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 투표에 참여했다. 별도의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진 않았지만 정치권에선 그가 정치 활동을 시작한 거라고 평가한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일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노타이 정장 차림으로 사전투표장에 나타났다. 배우자인 김건희 씨는 동행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배우자가 아닌 부친과 사전투표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 "보시다시피 아버지께서 기력이 이전 같지 않아 모시고 왔다"고 짧게 설명했다.
그는 "현재 행보를 대권 행보로 봐도 되겠는가", "향후 정치적 행보는 어떻게 되는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윤 전 총장의 사전투표를 두고 여권에선 정치 활동의 시작이라고 공세를 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 2일 "사전투표 일정을 기자들에게 알린다는 것 자체는 정치적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공직자가 정치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동안 행동을 했었느냐에 대한 비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부친을 모시고 사전투표에 나선 것이 고도의 정치 전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6일 "통상 혼자 하거나 부부가 같이하는데 고령의 아버님을 모시고 한 게 좀 특이하게 보였다"며 "부인과 관련된 여러 사법적 논란이 있다 보니 논란을 피하기 위해 부인 대신 고령의 아버님을 모시고 간 것 같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충남 공주가 고향인 부친과 함께 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충청 대망론' 인사라는 점을 각인시켰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이 사전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낸 자체가 메시지 아니겠냐"고 반문한 뒤, "부친의 동행은 충청권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 간 진행된 사전투표 첫날 투표장을 찾은 것을 두고 국민의힘을 지원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국민의힘은 재보선 압승을 기대하며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사전투표를 독려해왔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 4·15 총선에선 선거 당일 투표에 참여했다.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동률을 기록하며 양강 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번 달 1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1000명에게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은지 물은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전 총장은 23%를 얻어 이 지사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주목받은 뒤 한 달만인 11월 처음으로 선호도 10%를 넘었다. 직에서 사퇴한 직후인 지난달엔 24%까지 올랐다. 60대 이상, 성향 보수층, 대통령 부정 평가자, 현 정권 교체 희망자 등의 40% 안팎이 윤 전 총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의 첫 공식 행보에 취재진이 몰림으로써 야권 대선 1위 주자로서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2021.03.04 pangbin@newspim.com |
◆ 야권 통합 파이 커진 국민의힘...'尹 등판' 경쟁 분위기 무르익나
윤 전 총장의 거취는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구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4·7 보선에서 승기를 잡으며 파이가 커진 국민의힘은 야권 재편 주도권을 쥐면서 윤 전 총장을 영입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의 퇴장을 앞두고 달아오른 차기 당권 경쟁은 '윤석열 영입' 경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정진석, 권영세, 조경태 의원 등은 윤 전 총장을 영입해 대권 주자로 만들 수 있는 '관리형 당대표'를 강조하고 나섰다.
아직까지 정계 진출 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윤 전 총장은 당초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 제3지대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으로 구심력이 강해진 국민의힘이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되면서 윤 전 총장의 제3지대행에 다소 힘이 빠졌다는 분석이다.
윤 전 총장이 당장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나 그를 중심으로 한 범야권 틀이 국민의힘 주도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커졌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들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과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인처럼 극우가 아닌 중도 인물들을 택했다"며 "야권 통합을 통해 대권을 향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자신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기세를 바탕으로 안 대표, 금태섭 전 의원, 윤 전 총장까지 국민의힘에 다 들어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며 "야권, 보수, 중도 보수의 확대 재생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윤 총장에 대해선 "이번 선거에서 큰 도움이 됐다"며 "야권에 유력 대선 후보가 있고 없고에 따라 표 결집력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윤 전 총장같이 압도적인 1등 대선 주자가 (야권에) 있으니 안심하고 우리당에 표를 찍는 사람이 있어서 (국민의힘에) 표가 모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 일각에선 5년 만에 전국 단위 선거 승리를 이끈 김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을 업고 돌아올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김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김 위원장이 말한 '별의 순간'을 두고 정계 입문, 대선 출마 등 중요한 정치적 행위를 결정하는 타이밍으로 해석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이 종국에는 국민의힘에 들어오겠지만 당장 입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3지대에서 흐름을 지켜볼텐데 그 때 김 위원장과 함께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이번 보선 승리로 당 내에서 김 위원장을 다시 찾는 목소리에 분명 힘이 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이 당 지도부 체제를 갖추는 과정에서 과거의 행보를 답습하거나 분열될 경우 '김종인 역할론'이 다시 나올 가능성도 남아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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