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택배업계가 공원형 아파트를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시작은 입주민과 택배기사의 갈등이었지만 택배사의 근로조건 개선 문제로 번지며 정부 정책으로까지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저탑차량이 택배기사의 육체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주장이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정부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택배노조가 저탑차량 도입에 제동을 건 배경과 해결책 등을 살펴봤다.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고덕동 공원형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택배 갈등이 법정 싸움으로 불거질 예정이다. CJ대한통운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며 택배노조가 고발을 예고하면서다.
노조는 CJ대한통운이 아파트와 저탑차량 배송을 합의해줬다며 강신호 대표를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회사 측은 대리점과 영업점이 아파트와 협의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입장이다.
◆ 노조, 아파트·본사에 합의 여부 질의 공문 발송…CJ "기사가 필요에 의해 바꾼 것, 합의한 적 없어"
25일 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는 지난 21일 고덕동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와 CJ대한통운에 질의 공문을 보냈다. 양측이 저탑차량을 통한 지하배송에 합의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앞서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14일 택배노조에 "CJ대한통운의 아파트 배송담당팀과 지하배송을 합의했다"며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요청한 적 없는 손수레 배송 등을 일방적으로 주장, 단지와 입주민을 매도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관건은 본사가 산안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와 실제 합의가 있었는지다. 노조는 입주자대표회의 말대로 본사가 저탑차량 도입을 아파트와 합의해줬다면 본사가 산안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산안법은 사업주가 국가의 산업재해 예방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거래관계에 있는 사업주도 산안법 대상에 포함된다. 산안법 5조는 '사업주 등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택배기사와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닌 택배사는 '사업주 등'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택배사는 택배기사를 이용해 사업을 영위한다는 게 이유다.
하위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해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명시돼 있다.
노조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해야 하는 대리점장과 택배사가 저탑차량을 통한 지하주차장 배당을 합의, 산안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했다"며 "위반의 질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전국택배노조 관계자들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아파트 출입 금지와 문앞 배송 중단 관련 요구사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4.20 mironj19@newspim.com |
◆ 서브터미널 과태료 부과, 합의에 본사 관여시 산안법 적용 가능성…피해사례 아니라 어려울수도
반면 회사 측은 일단 아파트와 합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저탑차량은 이미 많은 배송업체들이 도입하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택배를 편하게 받을 수 있는지 협의하던 과정에서 노조가 문제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닌 택배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이 영업 차원에서 입주민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필요에 의해 저탑차량으로 바꾼 것"이라며 "고용관계가 아닌 만큼 본사는 택배기사에 직접적인 업무지시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본사가 실제 아파트와 합의에 관여했다면 산안법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앞서 작년 12월 고용노동부는 주요 택배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서브터미널에 대해 126건을 사법처리하고 과태료 66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서브터미널은 본사의 시설로, 대리점 등이 서브터미널을 이용하는 형태다. 당시 서브터미널이 컨베이어 방호장치 미설치 등 안전보건조치 위반이 확인돼 과태료 등이 부과된 점을 감안하면 본사 역시 산안법 적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산재보험료 부과대상 등 대리점을 택배기사의 실질적 사용자로 보고 있어 본사에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저상차량은 택배기사가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등 위험 요인이 있지만 실재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등 피해를 입은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저상차량 도입 그 자체로 산안법 위반을 적용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위험 가능성이나 추정이 가능한데, 사용자를 누구로 볼 것이냐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오는 30일까지 질의공문에 대해 아파트와 본사의 답신을 기다린 뒤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노조 관계자는 "답이 오지 않을 경우 입주자대표회의 공문을 근거로 고용부에 고발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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