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합리적인 분양가 산정을 내세우며 고분양가 관리지역에 대한 심사 규정을 개편했지만 현장에서는 일관된 기준이 없다며 반발의 목소리가 여전히 거세다.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에 발맞춰 HUG가 분양가 현실화에 나섰지만 '오락가락'한 기준에 조합과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공공기관 중 고객만족도 최하위 수준이란 결과가 나오자 분양가 독점권을 쥐고 주택업계에 '공룡'으로 자리한 HUG가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 분양가 심의기준 개선에도 곳곳서 "산정기준 뭐냐"...일반분양도 지연
3일 부동산 및 건설업계에 따르면 합리적인 분양가 산정을 표방하며 HUG가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지만 조합과 논쟁을 벌이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전국 분양시장 최대어로 관심을 끄는 부산 동래구 '온천4구역'(래미안 포레스티지, 총 4043가구)은 일반분양을 미룬 채 지난 26일 재개발 착공에 들어갔다. HUG와 분양가를 두고 시각차를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를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조합은 3.3㎡당 평균 분양가 1946만원으로 산정해 분양보증을 HUG에 신청했다. 하지만 HUG는 3.3㎡당 1628만원이 적절하다고 회신했다. 분양가 산정기준 개편에 기대감을 보였던 조합측은 희망 분양가와 차이가 상댕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은 이번 분양가 산정에서 동래구 명륜동 '명륜2구역'(명륜힐스테이트) 재건축을 기준으로 삼았다. 2018년 공급된 이 단지의 분양가는 3.3㎡당 1700만원 안팎이다. 공사비 인상과 단지 규모, 주택가격 변동률 등을 고려해 분양가를 산출했다. 이에 HUG측은 분양가 산정기준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온천2구역(동래래미안아이파크)을 비교 대상지로 삼았을 것으로 조합측은 추정한다. 이 단지의 분양가가 평균 1490만원 수준. HUG가 비교 대상을 명륜2구역으로 했다면 1600만원대 분양가 나올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두 단지 모두 온천4구역과 직선거리로 1km 정도로 떨어져 있어 비교 대상 조건에는 충족한다. 그럼에도 어느 단지와 비교했는지에 따라 분양가가 크게 차이난다. 단지 규모로 보면 온천2구역(3854구역)이 비슷하고 명륜2구역(2058가구)은 직전 분양 사업장이다. 조합측에선 가구수와 입지 등을 고려할 때 명륜2구역을 대상하기 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주변시세가 반영될 것이란 기대감도 무너졌다. 온천4구역 주변 단지의 아파트 시세가 3.3㎡당 2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HUG의 분양가 심의 개정안에는 주변(반경 500m 이내) 시세의 85~90%를 상한선으로 적용한다. 2017년 입주한 인근 단지인 '래미안장전'은 전용 84㎡가 12억원선에 실거래되고 있다. 3.3㎡당 33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장전금정산SK뷰'의 비슷한 면적은 3.3㎡당 2100만원 정도인 7억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인천 부평구 '부평4구역(부평역 해링턴플레이스)' 재개발조합도 HUG로부터 3.3㎡당 1500만원대의 분양가를 제시받고 분양을 연기하고 했다. 조합이 예상한 3.3㎡당 1800만원대의 분양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다. 작년 5월 3.3㎡당 1698만 원에 분양한 '부평 SK VIEW 해모로'를 기준으로 주택가격 변동률, 공사비 증가 등을 고려해 1800만원 수준이 가능하다고 봤지만 HUG의 판단은 달랐다. 조합은 산출 근거를 요구하고 있지만 납득할 만한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
비교할 대상이 없어 혼란을 겪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송도국제도시 6공구와 경기 화성 봉담 내리지구 사업장 등도 분양이 지연되는 곳이다. 이런 지역의 가장 큰 걸림돌은 HUG의 '인근 지역 매매가(반경 500m)' 규정이다. 500m 안에 신축이 있으면 분양가가 높게 산정되고, 그렇지 않으면 낮게 책정되는 상황이다. 주변에 신규 사업장이 없고 낡은 구축이 많으면 분양가 산정에 불리한 구조다.
◆ 깜깜이 분양가 책정·고객만족도 부실 등도 눈총
분양가 산정에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HUG가 독점하는 분양보증 권한을 경쟁구도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폐쇄적인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분양가 산정 기준을 명확히 공개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HUG의 분양가 규제로 1년 넘게 일반분양이 지연된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모습.<최상수 기자> |
이런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내부 분양가 심의기준을 무시한 채 특정업체에 3.3㎡당 325만원, 가구당 약 1억원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허용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비교 대상인 1km 이내 사업장을 두고 분양가가 더 비싼 5.6㎞ 거리인 사업장을 기준으로 했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실무 직원의 자의적인 분양가 산정이 있을 수 있었던 셈이다.
과도한 권한이 조직 문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년 고객 만족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HUG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과 함께 '미흡' 판정을 받았다. 우수·보통·미흡 3단계 평가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사실상 낙제점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번 결과는 기재부가 매년 내놓는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도 일부 반영된다. 방만경영 실태와 관리부실을 이유로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도 저조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 담당 임원은 "분양가 규제로 집값 안정화에 일조하겠다는 의지는 이해하지만 명확지 않은 산정 기준과 주변 시세와 너무 동떨어진 분양가로 사업 진행에 애로를 먹는 정비사업장이 상당히 많다"며 "분양이 지연되면 주택 실수요자의 피해로도 이어지는 만큼 HUG가 더 명확하고 전향적으로 분양가 심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