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율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둔 정치권 공방이 잦아들지 않자 그간 압도적 지지를 받던 윤 전 총장에 가려졌던 다른 야권 대선 주자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중 야권의 대안 카드로 주목 받고 있는 게 최재형 감사원장이다. 최 원장이 이르면 다음달 직을 사퇴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야권 내 개헌파가 최 원장을 지지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에 이어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도 잇달아 개헌을 주장하는 가운데 대선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최 원장이 '개헌'을 내세우며 세(勢) 규합에 나설 수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2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최 원장이 임기 5년 중 2년만 하고 2024년 총선에서 내각제를 도입하는 개헌을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다"며 이같은 전망에 불을 지폈다.
대표적 개헌론자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최 원장도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개헌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받고 있다. 2020.10.15 kilroy023@newspim.com |
최 원장은 야권 주자로 거론되자 마자 차기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단숨에 6위에 올랐다. 야권 주자 중에선 윤 전 총장(32.3%),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4.1%)을 이은 3위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1~22일 이틀 간 전국 18세 이상 2014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 선호도'를 물은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 홈페이지 참조), 최 원장은 3.6%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1.5%)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한 수치다.
최 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임기가 있는 분이 출마 얘기가 나오는데 적절하냐'는 질문에 "생각을 정리해서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헌법 기관장인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이 직무를 마치자마자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냐'는 물음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판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최 원장 측 핵심 관계자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 원장의 사퇴 여부와 대선 출마를 묻는 질문에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최 원장이) 고심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와중에 최 원장은 전날 광주보훈요양원과 감사원 광주 사무소 방문을 예정했다가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 감사원 측은 "코로나 상황을 고려했다"며 취소 이유를 밝혔지만 정치권에선 최 원장의 사퇴 순간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 원장 측 핵심 관계자는 '대선 주자 하마평이 광주 일정 취소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판단이 있지 않았겠냐"고 답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이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 2021.06.18 kilroy023@newspim.com |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최 원장을 지원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최 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김황식 전 총리와 최 원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의원은 "김 전 총리와 최 원장이 워낙 친하기 때문에 '(대권 도전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며 "곧 움직일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최 원장의 아내와 아버지께서 (대선 출마를) 강하게 권하고 있다고 한다"며 "나라가 엉망인데 (최 원장이) 역할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야권 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최 원장의 등판은 국민의힘에 굉장히 좋은 것"이라며 "윤석열 한 사람에게 기대는 것보다 경쟁 구도가 활성화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어 "최 원장은 비상장 잠재우량주"라며 "야권 내 다른 주자와 비교했을 때 잠재 가치가 굉장히 높다. 본격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감사원장을 했다는 건 검찰과 달리 국정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기회"라며 "아마 지난 3년 여 동안 감사를 하면서 나라가 곳곳에서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며 본인이 느낀 바가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인사는 그러면서 "최 원장이 개헌을 들고 나오면 레이스를 해보기도 전에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며 "최 원장은 개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지금 나오는 개헌 주장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견해를 잠재적 대권주자에 접목시켜 보려고 하는 시도일 뿐, 최 원장의 소신과는 전혀 무관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1.06.18 kilroy023@newspim.com |
여권은 최 원장이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을 키워가자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공세를 이어갔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 원장의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해 "당위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며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감사원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발했다.
윤 의원은 "반기문 전 유엔총장은 임기를 그만두고 정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현직 감사원장이 임기를 그만두고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정말 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공명정대함이 앞서야 할 감사원의 뒤편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처사는 비겁하다"며 "현직 감사원장으로서 이 같은 방식으로 공직 기강을 무시하는 처사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2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서 "최 원장께서 임기를 채우시고 감사원의 독립·중립성을 확고하게 다진 분으로 기억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며 "우리 사회 큰 어른으로 남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같은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 원장의 대선출마 움직임에 대해 "자리가 가져야 할 고도의 중립성과 전문성 등을 고려하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적 의지를 숨기지 않는 사람이 감사원장 자리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 공직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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