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콘텐츠는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수준으로 올라왔는데 산업·유통구조는 내수시장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콘텐츠에 비해 분배에 소홀하면 콘텐츠 제작사들이 글로벌 메이저 스튜디오에 예속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강호성 CJ ENM 대표이사는 지난 5월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 센터에서 열린 '비전스트림'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콘텐츠 시대가 도래한 것은 국내 콘텐츠 시장의 인프라나 유통구조가 선진화돼서가 아니라 K-콘텐츠가 우수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날은 CJ ENM과 한국IPTV방송협회의 갈등이 한창이던 때다. 당시 가장 관심이 높은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이지만, 대부분은 원론적인 답변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강 대표의 발언은 훨씬 직설적이었다.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강호성 CJ ENM 대표이사는 지난 5월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 센터에서 비전스트림 기자간담회를 열고 CJ ENM의 향후 투자계획에 대해 밝혔다. [사진=CJ ENM] 2021.05.31 nanana@newspim.com |
◆위기의 CJ ENM에 '해결사'로 합류
이날은 '할 말은 하는' 강 대표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각인시킨 자리였다. 대부분의 답변을 직접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 강 대표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은 경영자라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1964년생인 강 대표는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98년까지 서울과 대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했다. 이후에는 법무법인 두우와 광장에서 변호사로 일했는데, 가수 싸이의 군 재입대사건을 맡는 등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CJ그룹에 처음 입사한 것은 지난 2013년이다. CJ E&M의 전략추진실 법무실장으로 영입됐다가 바로 CJ㈜로 이동해 법무실장을 맡았다.
강 대표가 CJ ENM 대표이사로 내정됐다는 이야기는 CJ㈜의 부사장으로 CJ ENM 경영지원총괄을 겸임하던 지난해 7월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CJ ENM이 '프로듀스101' 순위조작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있었고 관련 소송을 풀어낼 '해결사' 역할에 법조인 출신인 강 부사장이 적격이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대표직을 맡은 것은 올해 초에 이르러서다.
지난 3월 프로듀스101 조작 사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강 대표는 CJ ENM의 실적개선이라는 다음 과제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서울=뉴스핌] 나은경 기자 = 강호성 CJ ENM 대표이사 [사진=CJ ENM] 2021.07.30 nanana@newspim.com |
◆다음 과제는 수익성 개선·티빙 성장
강 대표가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낸 데는 복합적인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코로나19로 영화관 및 외식사업을 하는 CJ CGV와 CJ푸드빌의 경영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CJ그룹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특히 코로나19로 콘텐츠 시장이 부각되면서 CJ ENM에 대한 그룹의 관심도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갑'인 플랫폼과 '을'인 콘텐츠사의 역학관계에 최근 몇 년 사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강 대표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지난해 CJ ENM으로부터 분할된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자회사 '티빙(TVING)'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IPTV 업계는 CJ ENM의 콘텐츠 값 인상 요구에는 결국 티빙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가 크다고 본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CJ ENM이 자사 콘텐츠를 경쟁플랫폼에서 빼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였다"며 "협상이 잘 돼 콘텐츠 값을 올리면 수익성이 개선되고, 결렬되면 티빙에서 독점 공급이 가능하니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큰 손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티빙의 목표는 오는 2023년까지 800만명의 유료가입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기준 티빙의 유료가입자 수가 150만명 수준이라고 추산한다.
CJ ENM은 국내에서 콘텐츠 경쟁력으로는 압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 비디오를 비롯한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들이 안방 진출을 노리고 있고, 통신사들은 물론 포털, 이커머스 업체까지 자체제작 콘텐츠를 만들겠다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지금 같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에 제대로 수익을 내려면 넷플릭스를 거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CJ ENM은 무엇보다 양질의 K-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려면 프로그램 사용료 현실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강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플랫폼이 프로그램 제작비로 지급하는 금액이 총 제작비의 3분의 1이다보니 우리는 주 수입원인 수신료보다 협찬수익에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변화되는 시장에서 K-콘텐츠가 글로벌로 나아가고 우리 지식재산권(IP)을 지키려면 프로그램 사용료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프로그램 사용료 문제 해결과 더불어 강 대표는 동아시아를 넘어 콘텐츠 최대시장인 미국에서의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자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고 있다.
강 대표는 "이제까지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K-콘텐츠만 활용한 제작·유통에 그치지 않고 현지의 원천 지식재산권(IP)을 CJ ENM만의 제작역량과 감성으로 영상화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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