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고향인 충북 음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년 3·9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흙수저로 판자촌에 살던 어린 소년은 성공신화를 쓴 공직자로 이제는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관료를 지낸 세 번째 대선 출마자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권교체 또는 정치세력 교체다. 김 전 부총리 또는 정치세력을 바꾸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대선 출마의 변으로 내걸었다.
김 전 부총리는 20일 충북 음성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내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며 "제가 생각하는 뜻과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좋은 세력을 모아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신당 창당과 대선 출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부총리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 장관을 그만두고 정치를 시작했다. 거대 양당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데 고향에서 친지, 가족 등 200명을 모아놓고 소박하게 했다"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과의 제3지대 통합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력과 함께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photo@newspim.com |
◆ 한국 나이로 64세, 판자촌서 끼니 걱정하던 흙수저 출신
주경 야독 끝에 입법고시·행정고시 모두 합격
김 전 부총리는 1957년 1월 28일 생으로 한국 나이로 64세다. 충북 음성 출신으로 엘리트 관료들이 많은 기획재정부에서 '흙수저'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 환경과 크게 내세울 것 없는 학벌을 노력과 능력으로 극복하고 보수 정부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권에서 경제 부총리를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어릴 때 서울로 상경한 후 11살 때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삶을 보냈다. 무허가 판자집에서 살고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할 정도였다. 그의 가족이 살던 판자촌마저 도시 정비 사업으로 헐리면서 허허벌판이었던 경기도 광주 대단지로 강제 이주돼 한동안 천막을 치고 살았다.
학업은 물론 끼니를 걱정하면서 살던 그는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17세의 나이로 한국신탁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칼럼에서 "은행에 들어갔을 땐 우쭐했지만, 고졸 출신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았고 100m 달리기 경주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이 때 어려움을 느꼈다.
김 전 부총리는 이후 1977년 국제대학에 진학했고, 야간학부를 다니면서 은행 합숙소에서 옆방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 잡지'를 보고 관료가 되기로 결심한 후 주경야독한 끝에 1982년 제6회 입법고시와 제26회 행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
이후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 사무관과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을 거친 뒤,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과 재정경제원 과장을 역임했다. 1988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미시간 대학교 유학길도 올랐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3년 3년 9개월의 최단 기간으로 미시간 대학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박사를 취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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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입문 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서 모두 중용
박찬종·문국현·안철수·반기문 성공 못한 제3의 길, 앞날은
김 전 부총리는 공직에 입문한 후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과 2005년 세계은행 선임 정책관으로 일했고, 2005년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과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재정정책기획관 등을 역임했다. 이때 참여정부에서 발표한 국정 마스터 플랜인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았고, 2009년에는 국정과제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10년 8월에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임명됐다. 이때부터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줄이는 등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2년 1월에는 기획재정부 2차관에 올랐다. 2012년 여야가 경쟁적으로 복지 공약을 내놓은 것에 대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여야의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가 선거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지만, 오히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급인 초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됐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photo@newspim.com |
박근혜 정부 당시 장관급 직책을 거쳤던 것에 비해 이례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경제 부총리에 임명됐다. 인선 배경은 "거시경제의 통찰력과 조정 능력을 겸비한 유능한 경제 전문가로 소년 가장 출신이이어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경제 사령탑"이라는 것이었다.
유명한 워커홀릭으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혁신 성장을 이끌어갔지만, 정권 실세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고,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 논란이 됐다.
꼼꼼하고 기획력이 뛰어나며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타입으로 평가받았으며 정책을 수립하고 개별 정책을 연계하는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책 수립의 마스터'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였다.
흙수저 출신의 입지전적인 스토리와 함께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운 경제 부총리 출신이라는 점에서 경제 부총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여야 모두에게서 정치 입문 제의를 받았지만, 꾸준히 국가 전체 경영을 고민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광역단체장, 국회의원 등 여야 모두에게 러브콜을 받은 김 전 부총리의 선택은 정치 세력 교체와 대선 출마였다. 쉽지 않은 길이다. 과거부터 정주영, 박찬종, 문국현, 안철수, 반기문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제3의 길을 선택했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제3 정치 세력은 기존 정당과 달리 정치 자금의 문제, 조직 및 인물의 문제가 노출된다. 김 전 부총리가 쉽지 않은 길을 열고 대한민국을 새로운 미래로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dedanh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