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현대제철이 협력업체 근로자 약 7000명에 대해 자회사를 통해 직접 채용하기로 한 가운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현대제철 당진공장을 기습 점거하며 사측과 대립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대제철이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이 아니라 현대제철 본사 소속의 채용을 주장하고 있다. 현대제철 자회사의 비정규직 채용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팩트체크해봤다.
[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민주노총이 현대제철 당진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시민제보] 2021.08.25 peoplekim@newspim.com |
◆ 민주노총 "현대제철, 직접 고용하라" 사흘째 농성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3일 저녁께 당진공장 사무동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여 당진제철소 직원 10여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어 지회는 25일 오후 3시 집회를 열 예정이다.
불법 파견 논란 등을 빚어온 현대제철은 내달 1일 자회사인 현대ITC 등 3곳을 출범해 현대제철 협력업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7000여명의 직원들을 직접 채용하기로 했다. 대기업이 자회사를 만들어 협력업체 근로자 및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제조업 최초다.
그동안 현대제철 협력업체 직원들은 현대제철을 상대로 근로환경 개선 요구와 함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노사 갈등의 완전한 해소를 위해 자회사를 통한 직접 채용에 나선 것이다.
협력업체 직원 7000여명 가운데 약 5000명은 자회사 입사가 진행 중이며 나머지 2000명은 현대제철 본사 소속의 채용을 요구하고 있다. 자회사 정규직은 현대제철 정규직 급여의 60% 수준에서 80% 수준까지 오른 임금을 받게 된다.
◆ '직접고용 시정지시'..기업·지자체 조치는 '제 각각'
현대제철이 임금 등 고정비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직접 채용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현대제철에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정지시는 권고사항일뿐 강제성이 없다. 공공기관과 수많은 민간기업들도 자회사 설립을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화하고 있다. 채용 형태 등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의 경영 활동 범주로 보는 것이다.
현대제철과 가장 유사한 형태로 파리바게트를 꼽을 수 있다. 고용부는 2017년 9월 파리바케트 제빵기사 등 6378명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지시 내렸고, 파리바케트는 자회사 피비파트너즈를 통해 파리바케트 제빵기사를 채용했다.
반면, 고용부는 지난 5월 르노삼성자동차에 부산공장 협력사 근로자 189명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으나, 현재 사측이 직접 채용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시정지시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일축했다.
또 고양시 덕양구청도 지난 5월 고용부로부터 노점단속 용역노동자 7명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받았지만 고양시는 공무직이 아닌,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은 한시적 사업 수행 또는 시간선택제 전환자의 업무 대체를 위해 일시적으로 채용되는 공무원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는 2012년부터 사내하도급 생산직 근로자 약 6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며 올해까지 약 3000명을 추가로 특별채용하고 있다. 다만 근속, 직무, 경력 등 전형과 채용 규모는 다소 유동적이다. 그룹 관계자는 "직무 등에 맞춰 비정규직 생산직의 정규직화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용부의 권고에 각 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의 조치는 제 각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제철은 권고사항 이상의 시도를 통해 자회사까지 설립하며 뭇매를 맞고 있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권고사항임에도 현대제철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 고용에 나선 것"이라며 "제조업 최초의 시도인 만큼 노사 및 고용 관계에 있어 한 단계 진보한 사례는 분명하다"고 평했다.
법원로고[사진=뉴스핌DB] |
◆ 법률상 시정지시는 행정지도...강제성 없어
현대제철이 자회사를 통해 합법적인 채용에 나서는데도 일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직접고용 시정지시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다. 법률상으로도 시정지시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만큼, 행정절차법상 행정지도로 정의하고 있다.
노동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가이드 라인'을 보면 파견·용역 근로자에 대해 조직 규모와 업무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사협의,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기관별로 직접고용, 자회사, 사회적 기업 등 전환방식을 결정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대체적으로 이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비정규직 근로자 6명이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 고용에 나선 한전에 청구한 고용의사표시 등 소송에서 법원은 원고 일부 패소 판결했다.
자회사를 통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채용이 직접 고용 의무에 해당되느냐가 쟁점이었는데, 지난 6월 서울남부지법 제13민사부(홍기찬 재판장)는 "정부 지침에서도 파견·용역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방법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 고용하는 방식을 인정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한전이 고용 의무를 이행한 만큼, 원고가 한전에 직접 고용을 요구할 수 없다는 첫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한전이 이들 근로자들에 대해 자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근무한 기간 동안 이들과 같거나 유사한 업무를 한 한전 정규직 임금에서 외주 업체의 임금을 뺀 차액을 배상하라고 원고 손을 들어줬다.
일각에선 정부 지침 역시 뒤집어보면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고, 자회사 고용인데도 이를 직접 고용으로 보는 시각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시점에서 문제는 민주노총이 당진 공장을 사흘째 점검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불법 농성과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며 "협력사 노조의 불법 점거를 풀어 국가 시설의 정상적인 가동이 가능하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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