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율 기자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정가가 들썩이고 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공작설에 이어 홍준표 캠프 연루설로까지 논란이 번지면서 국민의힘에선 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형국이다.
의혹의 핵심 쟁점들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가 정치적 공방만 지속하고 있어 해당 논란이 내년 대선 직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윤석열 고발 사주"의혹에...당사자들 해명 제각각
이른바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은 "윤 후보가 총선 직전인 지난해 4월과 8일 여권 정치인에 대한 형사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는 지난 2일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측근이었던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통해 검사 출신인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송파갑 후보에게 유시민·최강욱·황희석 등 여권 정치인에 대한 형사고발을 사주했다고 보도했다.
손 검사는 "제가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첨부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송부하였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손 검사로부터 당에 고발장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김웅 의원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혼선이 커졌다.
김 의원은 당시 수많은 제보 자료들을 당 법률자문위원단에 전달했으며 선거 기간이었기 때문에 해당 고발장이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언론 인터뷰마다 해명을 다르게 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그는 고발장을 작성한 주체, 윤 후보의 개입 여부, 조작 가능성, 제보자의 신원과 배후 등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도 "모 매체를 통해 보도 된 해당 고발장은 제가 작성한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힌다"는 입장만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 부위원장이었던 조성은 씨가 자신을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라고 밝히면서 박지원 국정원장과 보도 날짜를 상의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으로까지 논란이 번지게 됐다.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연루된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조성은 씨가 지난 10일 자신이 제보자가 맞다고 인정했다. [사진=JTBC 유튜브 캡쳐] 2021.09.10 kimsh@newspim.com |
◆ 제보자 조성은, 오락가락 해명에 곧 출국 예정
조 씨는 지난 12일 SBS 8시 뉴스에 출연해 자신이 뉴스버스에 고발 사주 의혹을 제보한 제보자가 맞다면서 "(제보와 보도) 날짜와 기간 때문에 저에게 어떤 프레임 씌우기 공격을 하는데 사실 9월 2일(뉴스버스 첫 보도 시점)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박지원 국정원장)이나 제가 원했거나, 제가 배려 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씨는 국민의당 비생대책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박 원장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인사다. 그는 해당 의혹을 지난 7월 21일 뉴스버스에 제보했으며, 지난 8월 11일 서울의 한 호텔 식당에서 박 원장과 단 둘이 식사 자리를 가졌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조 씨는 박 원장과 해당 제보 내용을 상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윤석열 캠프는 지난 13일 조 씨와 박 원장, 성명불상자 1인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 조치했다. 조 씨가 지난 8월 1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박 원장과 식사 자리를 가진 것이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을 공모한 정황이라는 주장이다.
이후 조 씨는 지난 16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박 원장과 (8월 11일에 이어) 8월 넷째 주 쯤에도 롯데호텔에서 한 차례 더 만났다"고 인정했지만 "박 원장이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어떠한 '코칭'도 없었고, 만남에 동석자도 없었다"며 '제보 사주' 논란을 부인했다.
조 씨는 지난 17일 같은 방송에서 김웅 당시 후보에 전달 받은 고발장을 당에 전달한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며 "법적 책임 있는 분들은 그냥 솔직하게 정면으로 법적 책임 받으셨으면 좋겠고 이렇게 은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폐될 순간이 오면 저는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씨는 해당 방송이 마지막 인터뷰라고 밝혔다. 그는 곧 스타트업 해외 진출 추진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을 찾아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1.09.08 kilroy023@newspim.com |
◆ '제보 사주 의혹' 박지원, '尹 아킬레스건' 언급하며 설전
'고발 사주 의혹' 배후로 지목된 박 원장이 '왜 잠자는 호랑이 꼬리를 밟는가', '내가 입을 다무는 게 유리할 것' 등의 경고 메지를 날리자 윤 후보에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마저 강한 유감을 나타내며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박 원장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저하고도 술 많이 마셨다. 내가 국정원장하면서 정치개입 안 한다고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본인(윤석열)한테 유리하다"며 윤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언급하고 나섰고 윤 후보는 "사적으로 본 적 없다. 갖고 있다는 자료를 모두 공개하라"고 맞섰다.
박 원장이 언급한 아킬레스건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 수수 사건을 윤 후보가 무마했다는 의혹이다. 박 원장은 국회 법사위 위원 시절었던 지난 2019년 해당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검찰은 관련 수사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 수사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박 원장의 발언은 결국 거짓말이거나 사찰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꼬집으며 "국정원장이 대선 주자를 평하는 것 자체가 국정원법 위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박 원장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이준석 대표 역시 지난 17일 "협박성 발언까지 있었던 것에 매우 강하게 유감을 표한다"며 "후보자와 과거 인연을 언급하며 협박성 입막음을 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조성은 씨와의 만남보다도 더 문제되는 정치 개입이다. 그 부분에 대해 박 원장께서 따로 유감을 표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홍준표-윤석열 후보가 지난 7일 서울 강서구 ASSA빌딩 방송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체인지 대한민국, 3대 약속' 발표회에서 행사 시작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2021.09.07 photo@newspim.com |
◆ 洪 "우리 캠프 언급 가만 안 둘 것" vs 尹 "특정 캠프 명시한 적 없어"
윤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씨와 박지원 국정원장, 성명불상자 1명을 고발하면서 고발장에 '특정 캠프'를 명시한 것을 두고 홍준표 후보와 설전을 벌였다.
윤석열 캠프는 조 씨와 박 원장 만남의 동석자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며 '성명불상자 1인'을 함께 고발했는데, 고발장에 명시된 성명불상자가 홍준표 캠프 인사라는 정치권 소문이 돌면서 홍 캠프 개입설이 불거졌다. 윤 캠프가 공수처에 접수한 고발장에는 "특정 선거캠프 소속의 동석자가 있었다는 다수의 의혹 제기 내용이 있었다"는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홍 후보는 지난 16일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제1차 방송토론회에서 "이번 고발 사건 성명불상자를 특정 캠프 소속이라고 특정했는데 특정 캠프가 어디냐"고 따져물었고, 윤 후보는 "제가 물론 고발 절차에 관여는 안 했지만 특정 캠프 소속이란 얘기 전혀 하지 않은 걸로 (안다)"고 답했다.
그러자 홍 후보는 즉각 "대변인이 발표했다"고 반박했고, 윤 후보는 "저는 금시초문"이라며 "제가 말씀드릴 때는 제보자를 전제로 해서 얘기를 했던 것이고 그 후에는 언론계에 널리 퍼져있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만약에 두 사람(조 씨와 박 원장)으로 끝낼 수 있는 사건이 아니면 추가 수사해 달란 뜻"이라고 해명했다.
동석자로 알려진 인사는 홍준표 캠프 소속 이필형 조직1본부장이다. 여의도연구원 전 아젠다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국정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씨는 해당 소문이 돌자 페이스북을 통해 "이필형이라는 분,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며 해당 인사와의 동석 사실을 부인했다.
앞서 홍 후보는 지난 15일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를 추모를 위해 빈소를 찾은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더 이상 엉뚱한 소리를 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며 "계속 그러면 정치판에서 떠날 줄 알아야 한다"고 윤 후보에 공개 경고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핵심 당사자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압수수색에 들어간 가운데, 국민의힘 김 의원이 의원실에서 공수처 관계자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2021.09.10 leehs@newspim.com |
◆ 尹, 대검과도 공방...공수처·대검 중복 수사 우려도
윤석열 캠프는 '고발 사주' 의혹을 둘러싸고 대검찰청과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캠프는 대검 감찰부가 고발장을 특정 언론에 유출했다고 주장했고 대검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윤석열 캠프 '정치공작 진상규명특별위원회'는 지난 17일 "일부 언론이 보도한 고발장 이미지 파일의 출처는 대검찰청으로 강력히 의심된다"며 "대검찰청은 즉각 이 의혹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대검 감찰부는 같은날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특정 언론에 대한 고발장 유출 의혹 관련해 대검 감찰부는 고발장을 유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의혹이 급속도로 커지자 공수처와 대검 감찰부가 동시 수사를 진행하면서 '중복 수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같은날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중복 수사에 따른 인권 침해 우려가 없냐'는 질문에 "우려는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중복수사를 양 기관이 피하겠다는 분위기가 있고 구체적인 인권침해 현상은 포착되지 않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두 기관이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선 잘 협의해서 진상을 규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지난 10일과 김웅 의원실과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사무실, 주거지 등 5곳을 압수수색하고 같은 날 오후에는 윤 후보를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대검찰청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수처가 김웅 의원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법 압수수색"이라며 제지에 나서자 공수처는 지난 13일 추가 압수수색을 이어갔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수사관들이 13일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압수수색을 위해서 들어가고 있다. 2021.09.13 leehs@newspim.com |
◆ 증거 수집 쉽지 않아..."윤석열 직접 수사 어려울 것" 전망
공수처는 조 씨가 김 의원에게 '손준성 보냄'이라고 표시돼있는 고발장 이미지 파일 등을 텔레그램을 통해 전달받은 것과 관련, 최초 발신자가 손 검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텔레그램으로 파일을 '전달'하면 최초 발신자에 대한 정보가 함께 전송되는데 '손준성 보냄'이라는 표시가 조작된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 검사가 텔레그램 '전달' 기능이 아닌 파일 내려받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서 전달했을 경우 '손준성 보냄' 표시가 자동생성 되기 때문에 최초 발신자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 검사가 최초 발신자라고 하더라도 고발장 작성자는 별개로 규명해야 하는 사안이다.
손 검사가 직접 고발장을 작성했다는 사실관계를 밝혀낸다고 해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적용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고발 접수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이미 공개된 내용에 법리적 판단을 덧붙였다면 공무상 비밀누설로 보기는 어렵다는 논리다.
대검 감찰부는 보도 직후인 지난 2일 곧바로 진상 조사에 착수했지만 윤 전 총장에게 직권남용,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 비밀 누설 등 등 주요 혐의 적용이 쉽지 않다는 잠정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의 핵심 쟁점인 윤 후보의 지시 여부는 손 검사의 진술 없이는 확인이 어렵다는 점에서 직접 수사로의 전환도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의혹을 풀 핵심 쟁점인 고발장 작성자, 국민의힘에 고발장이 전달된 통로, 윤 후보의 지시 여부 등 아직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사실이 없어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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