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삼성전자는 지난 1년간 정체와 성장의 기로에 섰다. 총수 부재가 불러온 경영 불확실성이 매순간 위기를 불러온 탓이 크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메모리 반도체는 비관론마저 짙어졌다. 시스템반도체는 미중 무역 분쟁 속에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 3분기에 분기 최대 실적을 내고도 '주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240조원의 대부분을 투자하기로 한 반도체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복합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뉴 삼성'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021.10.14 mironj19@newspim.com |
◆승부수 띄운 이재용…2나노 공정서 TSMC·애플과 경쟁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7일에 2나노 공정 반도체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시기는 오는 2025년까지다. 대만의 TSMC, 미국 인텔에 이어 세 번째다. 여기에 3나노 반도체도 업계에서 가장 빠른 내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세웠다.
이전까지 2나노 반도체 양산 계획을 구체화하지 않았던 삼성이 방향은 튼 이유는 차세대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수주 산업 성격이 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특성상 우수한 칩 제조 능력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갈수록 높아지는 고객사들의 요구를 외면할 경우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박스권에 갇힌 주가를 반등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국의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이재용 부회장의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도전은 저조한 주가 움직임을 반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주가는 연초(8만3000원) 대비 15% 가량 하락했다. 매 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반면 애플의 주가는 연초 대비 15% 가량 올랐고 TSMC와 인텔은 최소한 연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느 순간 사라진 삼성의 성장동력이 저조한 주가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메모리·하드웨어에 집중한 삼성의 한계"
삼성의 성장을 이끌었던 모바일 사업은 최근 폴더블폰 판매 호조로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으나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여러 차례 있었다. 가전은 삼성에서 우선순위가 아니고 결국 반도체가 삼성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삼성이 세계 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다. D램에서 44%, 낸드플래시 36%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반도체 부문이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메모리 시장 전망이 밝지 않다. 올 4분기부터 내년까지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비관론이 짙어지고 있다. 주요 고객사들이 재고를 쌓아 놓은 가운데 PC와 스마트폰 생산량은 올해보다 줄어들 것이란 게 주된 이유다.
특히 메모리반도체는 5500억 달러(약 650조원) 규모의 반도체 시장에서 30%만 차치하고 있다. 나머지 70%는 비메모리, 즉 시스템 반도체 분야로 삼성의 비중이 극히 낮은 시장이다. 삼성이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1위 도약을 내건 이유도 앞으로 성장동력은 시스템 반도체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집중된 투자가 오히려 삼성의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이 애플의 모델을 따라 서비스 사업을 키우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일부 결제(삼성페이)나 헬스 관련 앱(삼성헬스)의 성공에도 불구,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하드웨어 대비 삼성의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분야 성과는 드물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업계 최선단 14나노 DDR5 D램 [제공=삼성전자] |
◆미중 무역분쟁…삼성에게 "위기이자 기회"
반도체로 돌파구를 마련한 삼성의 현 상황이 녹록치 않다. 특정 지역이나 기업에 의존해 온 반도체 산업은 코로나19, 미·중 분쟁 등을 거치며 '공급망 리스크'에 휘청였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자국화 전략'으로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후공정까지 자국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새 판을 짜기 시작했다.
삼성은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매출 비중에서도 중국은 중요한 고객 중 하나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과 서구 사이 고조되는 긴장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중국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며 "삼성은 미국 고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중국 고객을 유지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 갈등을 거꾸로 삼성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 압력을 강화하면서 TSMC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인텔, 애플 등 TSMC와 거래하는 많은 기업들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경쟁사인 삼성이 큰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애플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자체 개발한 최신 반도체 'M1프로'와 'M1맥스'를 공개했다. 삼성이 만든 반도체를 사다 썼던 애플이 자사 칩을 만들어 내면서 삼성의 메모리 사업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삼성이 애플의 새 칩 생산을 수주하면 파운드리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나노 반도체 개발 등)이 부회장의 도전은 한국 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은 나서지 않고 품위가 있으며 통찰력을 지녔다고(shy, decent and astute) 알려져 있으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에 더해 거침없는(ruthless) 면모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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