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보이스피싱 조직과 피해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타인 통신 매개죄'가 공범에게도 성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범행을 함께 공모한 공동정범이라도 서로의 관계를 '타인'으로 보고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전기통신사업법위반, 전자금융거래법위반,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고 8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대법은 "피고인은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를 받아 제3자 명의의 유심이 연결된 VolP 게이트웨이를 설치 및 관리하는 방법으로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유인책이 피해자들과 반복적으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매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행위는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에서 금지하는 '타인 통신 매개'에 해당한다"며 "또한 피고인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공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게 등록하지 않고 기간통신사업을 경영했다고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매개되는 통신의 일방이 기간통신사업을 경영하려는 자의 공범이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대법은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타인 통신 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 및 무등록 기간통신사업 경영으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파기 이유를 설명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누구든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해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거나 통신용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전기통신사업을 경영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바에 따라 일정 요건을 갖춘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9~10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불특정 다수의 국내 피해자들에게 전화할 때 실제 발신한 인터넷 전화번호를 '010'으로 시작하는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변경해 정상적인 전화로 가장하는 통신장비를 국내에 설치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A씨는 같은 기간 서울, 인천 등 지역 숙박시설에서 이 같은 통신장비를 이용해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중국 등지에서 발신한 전화번호를 국내 이동통신 전화로 연결해 통신을 매개하는 기간통신사업을 불법 영위했다.
A씨와 공모한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이를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기관을 사칭·협박하는 방식으로 총 6870만원을 편취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만 A씨가 타인간의 통신을 매개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다.
즉,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A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관계가 서로 타인이어야 하는데 검찰이 공동정범을 전제로 기소한 이상 타인이 될 수 없어 주위적 공소사실을 무죄로 본 것이다. 법원은 A씨의 단독 범행 내용으로 한 예비적 공소사실 부분만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타인 통신 매개로 인한 전기통신사업법위반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과 피해자들이 피고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에 해당해야 하는데 이 부분 공소사실은 조직원과 피고인이 공동정범임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타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 부분은 피고인이 조직원들과 공모하지 않고 범행을 했다는 예비적 공소사실만 유죄로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2심 역시 A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타인으로 볼 수 없다며 예비적 공소사실만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반면 대법은 이들의 관계가 공범이어도 타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원심법원에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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