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오세훈 대(對) 더불어민주당이 치르고 있는 '예산전쟁'이 갈수록 확전되는 모양새다. 민주당 서울시의회가 오세훈 사업 예산 전액삭감에 이어 서울시에 3조원의 추가 지원금 편성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시의회는 예산안에 대해 감액심사 및 의결권한이 있을 뿐 증액과 자체 예산안 마련 권한은 없다. 하지만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서울시의원들의 입장도 절박한 만큼 지난 2011년에 이어 두번째 시의회 자체예산안 셀프 처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23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서울시의회의 3조원 규모 코로나19 생존지원금 예산안 편성 요구를 둘러싸고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 심사가 파행을 겪고 있다.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시의회는 예산안 심사가 시작되자마자 정부의 재난지원금 수준의 소상공인 손실보상금을 포함한 예산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서울시가 제출한 2022년도 예산안에 대해 심사하는 과정에서 오세훈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대신 박원순 전 시장 추진사업 예산과 오 시장이 줄인 교통방송(tbs) 출연금을 대폭 늘렸다. 이어 의회는 정부지원금 수준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인 3조원 상당 코로나 피해 지원금 마련을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예결위 심사에서 의원들이 잇따라 서울시에 코로나 생존지원금 편성을 요구하는 일종의 '필리버스터'식의 압박에 나섰다. 포문은 예결위 위원장 김호평 의원(광진3)이 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1조5000억원을 포함한 3조원의 지원금 편성을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영업제한 조치를 비롯해 정부 정책이나 서울시책으로 인해 희생을 강요당한 시민들은 숨이 막혀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생존지원금 필요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민주당은 제303회 정례회 예산 심사과정에서 조상호(서대문4), 이태성((송파4), 김혜련(서초1) 의원 등이 잇따라 서울시에 코로나 생존지원금 편성을 요구했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인턴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2022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hwang@newspim.com |
코로나생존지원금에 대한 반대 행위에 대해서도 서울시의회는 강경한 입장이다.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서울시에 답변에 대해 김호평 위원장은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재정안정화 기금 3조5000억원도 있고 순세계잉여금도 3조원으로 추정된다"고 서울시의 답변에 반발했다.
또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이 민주당의 코로나생존지원금을 '아이디어'라고 표현하자 김호평 위원장과 김혜련 의원은 "의회가 공식회의에서 서울시에 정식으로 제안한 안건에 대해 '아이디어'로 폄하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반발했다.
서울시는 민주당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특정 분야 예산을 정확히 못박아 놓고 나머지 예산은 줄이라는 방식은 예산안 삼의에서 없었던 일이라는 게 서울시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3조원 지원예산은 서울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가 내년 반영한 소상공인 코로나피해지원금은 2조2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전체 603조원에 이르는 정부 1년 예산에서 0.3%에 해당하지만 44조7000억원 수준의 서울시 내년예산에서 3조원은 6.7%에 해당한다. 정부보다 더 많은 지원금을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주당 서울시의회가 전용할 것을 요구하는 기금은 모두 사용처가 정해져 있고 순세계잉여금은 결산 이후 발생하는 것인데 이를 당겨 쓰자는 것"이라며 "내년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지만 대선 후보들의 보유세 동결 공약에 따라 재산세가 동결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실제 늘어날 세금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울시가 준비하고 있는 소상공인 지원대책도 모두 허사가 될 판국이다. 서울시는 신용보증재단을 통한 소상공인 대출 등을 위해 2조원 가량을 준비하고 있고 이밖에 각종 지원대책을 모두 합치면 2조60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키로 예산을 편성했다.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은 "민주당이 요구한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기존 예산도 집행이 중단되는 준예산 사태가 벌어지면 소상공인 지원은 한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의 소상공인 지원예산은 대출을 비롯한 말그대로 '지원' 수단이며 민주당이 요구하는 '퍼주기'식의 무상 지급은 아니다.
지금으로선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의 시각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연내 예산 심사가 안돼 전년도 예산을 반영하는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민주당도 서울시 예산이 필요한 만큼 준예산 보다는 자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는 지자체 동의가 없는 증액 예산을 처리할 수 없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자체가 반대하더라도 지방의회가 통과시키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도 있다. 이 때문에 여당인 서울시의회의 '셀프 예산 처리'도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오세훈 2기 시절이었던 지난 2011년 역시 민주당이 절대 다수였던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가 부동의한 무상급식 증액 등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오 시장은 시의회에서 신설·증액된 예산집행을 거부한 바 있다. 서울시는 2011년과 마찬가지로 시의회 셀프 예산에 대해서는 집행을 중단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시의회의 지원금 편성 요구를 서울시가 수용하면 민주당의 당론이 반영된 것이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년 선거에서 활용할 공격무기를 얻을 수 있는 '양수겸장'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내년도 예산은 일단 오는 27일까지 열리는 정례회에서 심사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이때까지 의결되지 않으면 원포인트 시의회를 열어 처리하게 된다.
dong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