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주요뉴스 사회

[르포] 비장애인도 승강장까지 30분…장애인 '이동권 보장' 외친 이유

기사등록 : 2022-02-26 08:00

※ 뉴스 공유하기

URL 복사완료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서울시내 21개 역, 엘리베이터 미비한 현실
리프트 5대 이용에 승강장까지 1시간40분 걸려
문제는 예산…교통공사 "최대한 노력할 것"

[서울=뉴스핌] 최아영 인턴기자 = 21일간 이어졌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종료됐다. 열차 지연으로 불편을 겪어 시위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전장연은 악역을 자처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쳤다.

현재 서울시내 지하철 역 중 254개(92.3%)가 '1역사 1동선'을 확보했다. 1역사 1동선은 교통약자가 지하철역 지상출구에서 대합실·승강장까지 별도의 도움 없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동선이다. 그럼에도 전장연이 매일 출근길 시위를 이어갔던 이유가 무엇일까. 뉴스핌은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시내 지하철역 3곳을 찾았다.

◆엘리베이터 없는 남구로역, 비장애인도 이동 어려워

남구로역은 시내 지하철역 중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이다. 대신 휠체어 리프트를 통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휠체어 리프트는 안전하지 않고 이용 시간도 오래 걸린다. 2001년 4호선 오이도역에선 리프트 케이블이 끊어져 추락·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26일 "목숨 걸고 타는 것"이라며 "리프트만 있는 역은 아예 이용을 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서울=뉴스핌] 최아영 인턴기자 = 남구로역 1번 출구에 있는 리프트. 중간이 끊겨 있어 리프트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 2022.02.25 youngar@newspim.com

남구로역 6개 출구 중 2곳만 리프트가 있다. 이 중 1번 출구에는 계단이 꺾인 부분 때문에 리프트가 2대로 분리돼 시간이 두 배로 든다. 또 역이 깊어 지하 5층까지 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다. 3대를 추가로 이용해야 하므로 총 1시간40분이 걸린다. 리프트 한대당 최소 20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도 승강장까지 최장 30분 가량을 걸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공사)에 따르면 남구로역 이용객(수송인원)은 지난해 기준 7호선 중 13번째로 많은 하루 평균 1만8747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임에도 장애인 이용이 불편했다. 구조상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렵고 예산이 부족해 난항을 겪었으나 올해 공사비 일부를 확보해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7년간 설치 미뤄진 대흥·신설동역…올해 설계 예정

대흥역은 엘리베이터와 휠체어 리프트를 혼용하는 역이다. 지하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지상 출구에선 리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리프트는 2번 출구에 있었지만 관련 안내 표시가 없어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엘리베이터도 각 층마다 있어 지하 3층 승강장에 가려면 2대를 타야해 비효율적이다. 비장애인이 이용해도 19분이 걸린다.

[서울=뉴스핌] 최아영 인턴기자 = 대흥역 2번 출구 휠체어 리프트 2022.02.25 youngar@newspim.com

2호선 신설동역과 5호선 까치산역도 대흥역과 상황이 비슷하다. 사유지이거나 설치 시 인도가 협소해지는 등 공간 문제로 설계를 지속 검토 중에 있다. 대흥역과 신설동역은 올해 설계 용역비 예산이 책정돼 엘리베이터 규격 또는 보·차도 경계 조정, 역사 내 기능실 재배치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2024년 내 1역사 1동선을 확보할 예정이다.

이에 정 실장은 "대흥역과 신설동역은 올해 설계 용역비가 편성됐다"며 "설계와 설치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하면 기한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장연 측에 따르면 설계에 1년, 설치에는 21개월이 소요된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 근본 문제는 '예산'

현재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역은 21개다. 공사측은 당초 올해까지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으나 최근 2024년으로 기한을 연장했다. 재정난으로 사업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도 예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법 개정안 중 예산반영 임의조항 변경이 그 시작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22.01.03 mironj19@newspim.com

교통약자법 개정안에는 국가·도가 특별교통수단의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지나며 운영비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가 '할 수 있다'로 바뀌어 실질적 지원을 받기 어려워졌다.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비로 책임질 수 있게 보조금법 시행령을 개정을 주장하는 등 예산 마련 대책을 촉구했다. 더불어 대선후보들의 권리예산 약속을 호소했다.

시위는 심상정 대선후보가 지난 21일 TV토론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보장을 약속하고 다음날 현장을 방문하자 중단됐다. 하지만 전장연은 "나머지 후보들도 약속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것이다. 2번 남은 TV토론 당일 퇴근길 시위를 예정 중"이라고 예고했다.

정 실장은 "이번 시위로 사람들이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번 시위에 의의를 밝혔다.

한편 이 같은 지적에 공사 측은 "현재 공사 중인 5개 역과 공사 예정인 10개 역을 올해 안에 완공할 예정"이라며 "설치에 21개월이 걸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며 빠른 시일 내에 완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6개 역에 대해서는 "2024년까지 1역사 1동선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아직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까치산역은 추경을 통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youngar@newspim.com

<저작권자©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