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는 이른바 '묻지마 폭행' 가해자를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특히 가해자의 신분증 주소지가 사건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어 도망과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대법원 제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모욕과 경범죄처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7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기도 안양시의 한 식당에 들어가 그 곳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앉아 있던 B씨에게 '묻지마 폭행'을 저질렀다.
경기 안양지구대 경찰관 3명은 식당 종업원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은 현장 CC(폐쇄회로)TV 영상과 A씨의 신분증 주소지 등을 확인한 뒤 피의사실의 요지를 고지하고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체포 후 안양지구대에 인치되자 30분간 지구대 의자를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경찰관 8명에게 욕설과 위협적인 말을 하고 소란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경찰에게 신분증을 제시했고 경찰은 폭행 장면이 담긴 현장 CCTV를 확보해 도망이나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음에도 (본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며 "지구대 안에서 소란 행위를 한 것은 위법한 체포에 대항하기 위한 정당행위"라고 반박했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6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신분증 주소지가 사건 현장인 안양시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거제시였고, A씨가 범행을 부인하며 피해자와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어 도주의 우려에 따른 체포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는 40차례 넘는 폭력 전과가 있음에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폭행했다"며 "경찰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현행범으로 체포했음에도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지구대에서 욕설과 위협적인 말을 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당시 지구대에 있던 순경 C씨를 모욕한 혐의에 대해서는 "A씨의 욕설로 C씨의 외부적 명예가 저하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신분증 거주지가 안양시에서 거리가 떨어진 거제시라는 이유만으로 신분이 불확실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진술과 음식점 CCTV 영상을 통해 증거는 충분히 확보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A씨가 지구대에서 한 말의 주된 취지는 자신을 체포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라며 "현행범 체포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이에 대해 묻거나 따지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모욕 혐의에 대해서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A씨는 폭행 이후에도 계속 B씨에게 욕을 하며 시비를 걸어 범행이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였다고 볼 수 있다"며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건 범행 경위를 볼 때 사안이 경미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는 경찰이 CCTV 영상으로 확인한 상황과 달리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신분증 주소지는 거제시로 사건 현장인 안양시와 멀리 떨어져 있어 도망과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경찰의 행위가 합리성을 잃은 위법한 체포라고 볼 수는 없다"며 "원심은 현행범인 체포의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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