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뉴스핌] 김범주 기자·소가윤 기자 = 전교생이 5명밖에 되지 않았던 울릉도의 한 초등학교를 떠나온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그 학교를 그리워했다. 대학 교수까지 교육계에 몸담은 세월만 36년이지만, 섬마을 교사 생활이 원칙을 갖고 교육에 애정을 쏟게 한 근간이 됐다고 강조한다.
최근 서울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사옥에서 만난 권택환 교총 회장 직무대행은 여전히 교사로 불리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하윤수 전임 회장이 오는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시교육감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공석이 된 회장 자리를 권 수석부회장이 대행하고 있다.
시간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교육 홀대론'이 나오면서 교육계가 비상이 걸리자 직접 정치권 인사를 만나 교육 정책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나섰다. 교육계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위원회 박성중 간사와 처음 만난 것도 권 직무대행이다.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교육부 통폐합 문제도 방어에 나섰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고교학점제 추진 등 문재인정부의 주요 교육정책에서 대척점에 섰지만, 학교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선 권 직무대행이 "지금 학교가 전쟁터인데 교육부 없앤다고 해결되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다만 2025년 전면 시행할 예정인 고교학점제, 자사고 폐지 등 학교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칠 정책은 속도조절 또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새 정부에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권택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회장 직무대행). 2022.03.23 mironj19@newspim.com |
<다음은 권택환 회장 직무대행과의 일문일답>
-새 정부 인수위 박성중 간사를 만났다고 들었다.
▲현재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는 교육부도, 과학 기술도 아니다. 자칫 아무것도 아닌게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육계가 섭섭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교총이 교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를 잘 전달할 의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전달했다.
-교육부 폐지 또는 통폐합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일단 인수위가 꾸려진 이후 교총이 제일 먼저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 같은데, 교육단체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준다는 점에서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학교 현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이다. 3월 새 학기 정상등교로 시작됐지만, 수업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게 학교에 확진자 나왔을때 대체강사를 투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대체 강사를 구하기 어려워 교사 자격증 없는 강사들 한시적으로 투입한다고 하고, 퇴직한 교사도 투입한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교육부까지 없앤다고 하면 당연히 사기가 저하된다. 이런 부분 알아달라는 의견을 전했다.
-오는 7월 국가교육위원회 출범 등 변수도 있다
▲국가교육위는 정파를 초월해 미래교육의 방향, 비전을 사회적 논의를 통해 수립하는 기구이지 교육부 업무를 수행하는 집행기구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유·초·중등 교육의 무분별한 시도 이양은 교육감 자치만 강화할 뿐이지 지역 간 교육격차, 학교 정치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은 초‧중등교육과 연계돼 있어 억지로 분리시키면 입시 혼란만 불러올 것이고, 사교육 심화 등도 우려된다. 그래서 독립 부처로서 교육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국가의 교육책무 실현, 지역적 차이와 차별 없이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하고 지원하는 집행기구로서 교육부가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권택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회장 직무대행). 2022.03.23 mironj19@newspim.com |
-고교학점제, 자율형사립고 등 현안에 대한 의견도 전달했는지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준비 안 된 부분이 많아 혼란스럽다고 한다. 이 부분 재검토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교사들도 많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의견도 전달했다. 지난해 2022 개정 교육과정 고시했는데, 민주시민교육 담겼다. 민주시민이라는 용어 자체는 좋은데, 좋은 시민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한다.
-특별히 강조한 부분은 무엇인지
▲코로나 환경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방역 관련 업무로 교사들이 평소업무보다 5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교실에 학생 확진자가 3분의 1가량이고, 교사도 코로나 환경에서 안전하지 않고, 집에서도 줌으로 교육하고, 대체인력 구하지 못해 아픔이 크고, 교육청에서 신속항원검사키트 배분한 것 학교에서 다시 소분해야 하는 등 이런 상황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가 수능 중심의 정시를 확대한다고 하는데
▲다시 고교학점제를 얘기해야 하는데,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점수를 잘 받는 과목을 선택하기를 바랄 텐데, 현실적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체제가 유지될까. 결국 점수 잘 따는 과목으로 학생들 몰릴 텐데 한계가 있다. 그것보다는 학생들이 다양성, 자율성,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입시는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갈 역량을 어떤 노력으로 얼마나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본질이다. 물론 어떤 입시제도도 완벽하지 않다. 다만 학생들이 능력에 따라 다양한 기회를 갖도록 전형 간 균형을 맞추는 입시제도를 마련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새 학기 시작 이후 학교 교실이 혼란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부산에 동아고등학교가 있다. 파악하기로는 지난 3월 2일 새학기 전면등교 안 했다. 교과서는 집으로 미리 보내줬고, 교사들이 미리 온라인으로 수업하도록 준비했다. 학교에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어떤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지적하고 싶은 거다. 부산의 그 학교는 지금 수업 잘 하고 있다.
미리 준비한 학교는 요즘 코로나 대응 잘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3월 첫달은 담임선생님, 학생들과의 교우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낸다는게 너무 안타깝다. 학력도 마찬가지고, 교육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게 아닌가 싶다.
-학교 상황에 밝은데, 매일 현장 파악을 하는 것인지.
▲지금도 학교 현장 교사들과 교육 문제에 대해 주1회 토론하고, 교사들에게 정책에 대한 충고도 듣는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대안 제시가 어렵다.
-교사 출신으로 아는데.
▲36년 전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육자로 첫발을 내딛었고, 전교생이 5명인 울릉도 섬마을에서도 3년 근무했다. 그전에는 벽지학교, 산골학교에서 3년 근무했었다. 몇 명 안 되는 학생도 자발성을 갖추도록 가르쳤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면 창의성, 책임감이 생긴다는 것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울릉도에서의 교직 생활이 가장 행복했다.
-교육 원칙이 '자발성'인지.
▲정부가 바뀔 때 마다 피부로 느끼는 점이 이것이다. 교육부가 강제로 학교에 내려보낸 정책은 정부가 바뀌면 없어졌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끝이 난다. 교육부는 과거 어느 정부에도 있었다. 정부에서 밀어붙인 정책이 유지된 게 있었는가.
그래서 내세우는 게 '500원' 이론이다. 어떤 사람이 조용히 살고 싶어서 아파트를 떠나 전원주택을 샀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매일 시끄럽게 놀다보니 참기 어려웠다. 무작정 내쫒기 어려웠던 그 사람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유 없이 500원을 줬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했지만, 반복해서 돈을 받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놀이'가 아닌 '돈'을 받기 위해 골목길에 머물게 됐다는 얘기이다.
그런 아저씨가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자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더 이상 놀지 않게 됐다. 자발적으로 잘 놀던 골목길이 받던 '돈이 끊기자 의미 없는 공간이 됐다'는 교훈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많이 하는데, 학교에서 잘 하던 사업도 지원이 끊기면 끊기는 거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권택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회장 직무대행). 2022.03.23 mironj19@newspim.com |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이들의 인성이 건강해져야 한다. 아이들의 인성을 건강하게 하는 게 '땀'이다. 운동하고 땀에 젖은 아이들에 비해 움직이지 않고 바짝 말라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학교 현장에서 봤다. 전 세계 흡연율 1위, 자살율 1위, 초중고 조현병 순위권, 학생 행복지수 꼴찌 등 20년 정도 상관성을 연구해보니 '땀을 안흘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학원도 좋고 인공지능(AI)도 좋지만, 건강과 인성이 앞서야 한다. 인성없는 지식을 추구하면 사기꾼이 되며, 인성없는 체력은 조직폭력배가 된다는 현실을 봤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의 면연력을 키워주고, 인성을 회복하려면 건강해야 하고, 이런 게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섬마을에서 근무하면서 깨달은 것들이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으로 들었다.
▲초등학교에서 13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후 교육부 연구사로 자리를 옮겼다. 교육부에서는 연구사로 시작해 장학관, 특수교육정책과장 등 총 13년 가량 근무했고, 대구교대로 자리를 옮겨 10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했다. 교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했지만, 항상 경어를 사용했다.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는 것도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이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학교가 혼란스러운데,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내가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동료성인데, 우리 학교가 잃어버린 모습이다. 교사들끼리 동료성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협동을 강조한다는 건 모순이다. 교육의 본질 측면에서 힘을 모아야 하는데, 내부에서조차 편가르기가 있는 것으로 들었다. 모든 것은 관계가 형성되면 안될 일도 된다. 학교 조직도 결국 인간관계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학교가 교육 기관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 기관이 됐다는 점에 있다. 어떤 학교에서 학생은 1명인데 돌봄 교사, 방과후 활동 교사, 기초학력 담당 교사 등이 서로 데려가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수업이 제대로 되느냐면 그렇지도 않은거 같다. 통계의 함정인데, 우리나라 전체 교사 수 대비 학생수를 따지면 20명 가량이다. 하지만 대도시와 지역학교가 다르고, 대도시 내에서도 과밀학급 있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들 차이도 크다. 코로나로 더 벌어진 학력격차를 해결해야 하는데, 학생수가 학급당 20명 이하인 일부 영재학교는 전면 등교수업을 했다. 이렇게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념 편향 중심의 교육정책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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