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연순 기자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마지막까지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간 5년 간 회장으로서의 소회를 밝히는 것을 넘어 '정책기관장 흠집 잡기'라는 표현을 써가며 새 정부를 향해 비판을 이어갔다. 통상 정권이 바뀌면 산업은행 회장 등이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의를 표하는 건 일반적이지만 이 회장처럼 새 정부의 공약에 날을 세우며 정면 비판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 5년을 지킨 금융권 맏형으로 구조조정 등 비판에 정부 지킴이를 자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산업은행) |
이 회장은 지난 2일 퇴임을 앞둔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에 대해 작정한 듯 '쓴소리'를 날렸다.
그는 "부산 이전이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절차 없이 이뤄지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며 "잘못된 결정은 불가역적인 결과와 치유할 수 없는 폐해를 낳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은의 부산 이전으로 부·울·경 지역에 2조~3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란 주장이 있는데 학자로서 보기에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이라며 "국가 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마이너스 효과는 무시하고 있는데, 이런 황당한 주장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직격했다.
이 회장이 윤 당선인의 산은 부산 이전 공약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반대 입장 표명은 예건됐지만, '치유할 수 없는 폐해', '황당한 주장' 등 발언 수위가 쎘다.
그는 사표를 제출한 배경에 대해선 "산은은 은행인 동시에 정책금융기관임으로 정부와 정책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순리라고 평소 생각해 왔다"며 "그런 의미에서 새정부 출범에 맞춰 사임의사를 전달한 것이지 다른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정부 교체기마다 정책기관장 교체와 흠집 잡기, 흔들기 등 소모적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며 새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 회장이 언급한 '흠집 잡기, 흔들기' 등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인사 논란에서 인수위가 산은을 타깃으로 삼은 걸 염두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인수위는 금융위원회가 산은에 유관기관에 대한 임기말 인사를 중단하라는 지침을 두 차례나 보냈다며 대우조선 대표가 선임된 배경에는 이 회장이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인수위에서 산은 간부들을 소환해 질책한 것도 이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회장이 작심비판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대표 선임 논란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말을 아꼈지만 매우 불쾌해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또 문재인 정부 최장 기간 '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한 금융권 수장으로, 일각에서 형성된 '정부 실패론'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쌍용자동차와 대우조선해양 매각 무산 등 잇따른 매각 실패에 일각에선 정부·산은 책임론이 제기됐다.
이 회장은 "지난 5년간 산은이 한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적 비방"이라며 "내가 2017년 산은 회장에 취임할 때는 기업 구조조정 현안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구조조정이 거의 추진되지 않았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이 회장은 문 정부에서 국책은행장 중 가장 정치색이 강한 인물로 분류돼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노무현 정부 때는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냈고 2017년 문재인 대선캠프 비상경제대책단을 거쳐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산은 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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