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글로벌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자 무제한 돈을 풀던 미국과 EU 등 선진 국가들이 이제 인플레이션 우려로 긴축과 금리인상 등을 통해 돈줄을 조이고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 급등은 물론 원자재난 속에서 우크라이나전쟁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경제와 궤를 같이 하는 한국경제 역시 휘청거리고 있다. <뉴스핌>은 현 국내외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우리 기업과 정부의 대응방안을 모색해 본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건설업계 실적과 해외수주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철근, 시멘트 등 핵심 자재가격이 치솟자 납품업체들이 공사 중단까지 거론하며 건설사에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대형 건설사보다 재무구조가 불안해 손실에 취약한 중소건설사들은 자재비 인상으로 더 큰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이같은 건설업계의 위기는 더 커질 전망이다. 사업 손실이 증대되고 해외수주는 줄어들 태세라 자칫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의 상황이 되찾아올 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철근·레미콘가격 10% 인상시 대형사 영업이익 10% 내외 위축"
10일 삼성증권 및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대형건설사들은 철근·레미콘 가격 상승 여파로 영업이익에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증권은 올해 철근·레미콘 가격이 전년대비 평균 10% 상승할 경우 대형건설사들의 올해 영업이익도 10% 내외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2628억원)는 종전보다 11.8% 감소한다. GS건설(7343억원)은 7.3%, 대우건설(7597억원)은 6.9%, DL이앤씨(8704억원)는 3.8%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2022.05.09 sungsoo@newspim.com |
철근·레미콘은 단일 재료비 기준 매출 대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자재다. 레미콘의 원재료인 시멘트 가격은 지난해 6월 이후 약 47%(시멘트 업체 고시가격 제시안 기준) 올랐다. 철근 역시 지난해 초 대비 약 47% 올랐다.
철근, 레미콘, 시멘트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 발간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내 건설산업에 미칠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러시아 원자재 수입이 어려워졌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이 차단됐고,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석탄 수입을 금지해서다. 이로 인해 원유와 시멘트 원료인 유연탄 가격이 일주일 만에 20~80% 급등했다. 유연탄은 시멘트 제조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핵심 연료다.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2022.04.19 ymh7536@newspim.com |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는 연초 회복세를 보였던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수주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올해 초만 해도 유가 회복에 힘입어 해외건설수주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예상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돼 불확실성이 짙어지면서 수주 환경이 악화됐다.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이 해외건설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경기침체 위험이 고조됨에 따라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전망이 불확실한 상태"라며 "신규 프로젝트의 발주 규모와 시기는 현 시점에서 예측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 철콘·건설사 "공사비 인상" 연쇄 요구…"중소업체 타격 더 클 것"
철근·콘크리트 업계는 건설사에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면서 공사 중단(셧다운)에 나섰다. 부산·울산·경남지역 철근·콘크리트(철·콘) 하도급 회사들은 지난 6일 공사 중단에 들어갔다.
부울경 철·콘연합회는 철근과 콘크리트 공사 관련 하도급 회사 24개가 가입한 사단법인이다. 이들은 100여곳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비회원사와 다른 지역 철·콘 회원사까지 합치면 공사현장은 200여곳에 이른다.
대형 건설사들은 철근·콘크리트 업계의 계약금 인상 요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건설사들 역시 시행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공사하는 만큼 공사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사를 재개하려면 철근·콘크리트 업계의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져 올해 1분기를 시작으로 건설사들 실적에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산연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급등한 유가와 유연탄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건축물은 지난해보다 1.5% 정도 생산 비용이 상승하고, 일반 토목시설은 3% 가량 생산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이 2.5~5.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수익의 상당 부분이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건설자재 가격 상승이 건설업계에 우려 요인이 되고 있다"며 "인건비 및 외주비 증가는 차치하더라도, 철근 및 시멘트 가격이 전년대비 평균 10%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주요 건설사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약 10% 내외로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김성수 기자 =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김성수 기자] 2022.04.05 sungsoo@newspim.com |
일부 현장에서는 조합에 공사비 인상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협의가 쉽지 않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지난달 15일 오전 0시 현장에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시켰다. 공사 현장 곳곳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2020년 6월 시공단과 전임 조합 집행부가 5600억원의 공사비 증액 계약을 맺었는데, 새 조합 집행부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서 벌어진 갈등이 공사 중단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이같은 사업장이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공사비 인상 협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경우 조합원 부담이 늘어나서 합의가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조합의 경우 계약 파기까지 검토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대형사보다 손실에 취약한 중소건설사들은 자재비 인상으로 더 큰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석인 건산연 선임연구원은 "자재비가 단기에 급격히 오르면 당초 입찰한 금액 대비 손실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서 일반적으로는 입찰 참여를 자제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중소건설사는 생존을 위해 '적자 수주'를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수주 이후 계약자는 프로젝트 관리(낭비제거 등)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응이 쉽지 않다"며 "정부는 인프라투자 확대 등 공공건설 투자에 일관성을 확보해주는 정책 발표와 더불어 정책자금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건설업계의 단기 어려움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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