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 강남구 압구정동 R단지 재건축 최모씨(62)는 조합장은 지난해 10월 2차 정밀안전진단을 신청하기 위해서 자금 모금을 진행했지만 입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사업을 추진할 수 없게 됐다. 몇 달간 이렇다 할 만 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정밀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한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조합원들 설득에 나섰고 2차 정밀안전진단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윤 정부 출범 이후 관련된 내용이 내년으로 밀린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입주민들의 항의 전화에 진땀을 빼고 있다. 최씨는 "갈팡질팡한 정책 변화로 인해 사업을 추진하려는 당초 계획을 내년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내년에도 안전진단 규제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 그동안 노력한 결과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서울 지역 대표 재건축 단지들이 재건축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공약 이행 과제에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개정'의 이행시기를 내년 상반기로 미뤘기 때문이다.
당초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법 개정 없이 국토교통부 시행규칙 개정만으로 가능해 이르면 올 상반기에 추진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최근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이 오르는 등 시장이 불안한 조짐이 보이면서 규제 완화보다는 시장 환경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강남과 여의도‧목동 등 주요 재건축 단지 조합들은 안전진단을 내년으로 미루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2022.05.19 ymh7536@newspim.com |
◆ 尹 정부, 안전진단 기준 완화 내년 상반기로 연기
2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개정은 내년 상반기에 추진키로 결정됐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재건축 시행 가능 여부를 판정하는 단계로 사업 첫 관문에 해당한다.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승인 ▲조합 설립 인가 등 이후 10년이 걸리는 재건축사업의 단계를 밟을 수 있다.
경제성과 생활 불편 요소를 대폭 줄이고 구조 안전에만 초점을 맞춘 현행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는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도입됐다. 노무현 정부는 구조안전 분야를 50%까지 올린 바 있다. 뒤이은 이명박 정부 때는 40%로 낮췄으며 박근혜 정부 들어 주택공급확대를 위해 20%로 줄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조 안전성 가중치는 다시 50%까지 올랐다. 또한 조건부 판정(D등급)이 날 경우 의무적으로 공공기관의 검증(적정성 검토)을 거치도록 했다. 이어 지난해 '6·17대책'에서 현장조사를 확대하는 등 안전진단 절차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문 정부 시절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현재까지 서울 지역에서 안전진단 절차를 통과한 단지는 ▲서초구 방배삼호 ▲마포구 성산시영 ▲양천구 목동6단지 3개 단지가 유일하다.
목동 6단지의 경우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했지만 이후 추진한 11단지의 경우 1차 안전진단에서 6단지(51.22점)와 유사한 51.87점을 받고서 2차 적정성 검토에서 고배를 마셨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기존 예비안전진단·정밀안전진단으로 나뉘었던 절차에 적정성 검토를 추가하고 공공기관(한국건설기술연구원·국토안전관리원)이 이를 수행하도록 했다. 아울러 평가 항목 중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20%에서 50%로 대폭 상향해 건물 내구도에 문제가 없으면 재건축 사업 진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2018년 이후 약 4년 동안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최종 단계인 '적정성 검토'까지 통과한 전국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14곳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건설기술연구원·국토안전관리원이 적정성 검토를 진행한 단지는 총 28곳으로 통과율은 절반에 그치고 있다.
[서울=뉴스핌]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공사 현장 전경. [사진=유명환 기자] 2021.09.27 ymh7536@newspim.com |
◆ 강남‧노원‧양천‧여의도 재건축 단지, 정책 변화에 안전진단 일정 연기
안전진단 규제완화가 내년으로 밀리면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려는 단지들이 일정을 미루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강남구 재건축 대표 단지인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이 급제동이 걸렸다. 당초 현대8차와 한양3·4·6차가 속한 압구정4구역은 지난해 2월 정부가 재건축 조합원이 2년간 실거주해야 분양권을 주는 법안을 추진하며 압구정에서 첫 조합을 설립한 이후 정밀안전진단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현재 답보 상태다.
해당 조합은 2017년 11월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된 지 약 3년 만이다. 1300여 가구를 2000여 가구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24개 단지, 1만466가구의 아파트로 구성된 압구정동의 다른 구역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압구정동은 4구역을 포함해 1구역(미성1·2차)과 2구역(신현대9·11·12차), 3구역(현대1~7차, 10·13·14차), 5구역(한양1·2차), 6구역(한양5·7·8차) 등 6개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나뉘어 재건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압구정동 재건축사업은 대부분 재건축 가능 연한(30년)이 지났지만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다. 지역에 오래 거주한 고령층이 많은 데다 내부 수리를 마친 가구가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2020년 '6·17 대책'을 통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개정안은 조합 설립이 안 된 재건축 아파트는 2년 이상 거주한 소유주만 신축 입주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번 조합설립인가에 따라 4구역은 조합원의 2년 의무 거주 요건 등의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주변 단지들로 앞다퉈 조합설립에 공을 들렸다. 실제 4구역이 조합을 설립한 직후 같은 해 5구역과 2구역과 3구역도 조합 설립을 맞췄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날 일제히 올랐다. 전국은행연합회가 전날 4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를 전월대비 0.12%포인트 오른 1.84%로 공시한 여파다. 4월 코픽스는 2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모두 코픽스 상승분만큼(0.12%포인트)을 반영해 주담대 금리를 각각 3.54∼5.04%와 3.80∼5.01%로 올렸다. 하나은행은 3.812∼5.112%에서 3.836∼5.136%로, 신한은행은 3.54∼4.59%에서 3.58∼4.60%로 인상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2022.05.17 pangbin@newspim.com |
목동과 여의도, 상계동 재건축 단지도 안전진단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실제 적정성 검토 단계에 들어간 목동신시가지 1·2·3·4·5·7·10·13·14단지 9곳은 안전진단 수행 기관에 보완 서류 제출을 미루는 식으로 일정을 보류하고 있다. 8·12단지는 적정성 검토 신청도 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현행 기준대로라면 13개 단지 중 한 두곳을 빼고 모두 적정성 검토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노원구 태릉우성은 지난해 7월 적정성 검토에서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은 후 지난 3월 안전진단을 다시 신청해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하지만 정밀안전진단 규제 완화가 연기되는 바람에 주민들의 실망이 매우 크다.
여의도 역시 안전진단 일정을 놓고 조합장과 조합원들간 의견 조율에 나서고 있다. 여의도 한 재건축 조합장은 "안전진단 규제가 내년으로 밀리면서 주민들이 사업을 내년으로 연기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현재 사업을 추진한다고 해도 2차 정밀안전진단 규제 완화가 없을 경우 막대한 자금이 투입한 보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는 신고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등의 정책공약을 곧바로 이행하기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집값 추이를 살피며 신중한 규제완화를 단계적으로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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