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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폭증하는 형사 사건…'나중에'라고 말할 권리, 누구에게도 없다

기사등록 : 2022-08-0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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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요, 나중에 하면 되죠'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유독 자주 듣는 말이 '아직'과 '나중'이다. 형사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들의 경우 거의 매주 듣는 말일 것이다.

수사 단계에서 사건이 묶인 채, 멈춰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사건이 폭증하니 업무부담도 따라 폭증한다. 경찰관들이 수사 부서를 기피하게 되니 인력은 더욱 부족해진다.

원래 검찰이 처리하던 복잡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들까지 아무 대책 없이 경찰에 맡겨졌으니 처리가 늦는 것이 당연하다. 변호사가 달라붙어 법리와 증거를 정리하는 경우에는 그나마 조금 낫지만,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았거나 담당 수사관이 바쁜 경우 몇 달씩 진전이 없다. 하릴없이 수사 지휘를 기다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이언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강남] 2022.08.09 peoplekim@newspim.com

지난 주에는 고소한 지 5개월이 지난 사기 사건으로 경찰에 연락했다. 담당 수사관은 태연하게 아직 검토중이라며, 다음 달에 피의자가 출석한다 했으니 그때 조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채 10페이지도 되지 않는 간단한 사기 사건인데도, 피의자가 자백한 문자메시지와 입금내역을 모두 제출해도, 법리와 판례를 첨부하여 결정문 형태로 완성해 보내도, 수사관이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조심스럽게 계좌 조회나 다른 피해자들 조사는 해보셨냐고 물었으나, 역시 예상했던 답변이다. "아직요, 나중에 하면 되죠".

그렇지 않다. 나중에는 늦는다. 이미 고소 사실을 알았으니 피의자는 참고인들과 입을 맞출 것이고, 민사집행을 피하기 위해 자기 명의의 재산을 은닉할 것이며,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진술을 잘 해야 돈을 돌려준다고 압박할 것이다. 그 동안 자금을 사기당한 피해자는 결제를 하지 못해 거래가 끊기거나 도산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너무 늦는다. 피해자에게, 나중이란 없다.

우리 헌법은 신속한 절차권을 규정하여,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님을 선언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은 국민의 알 권리는 나중에 알아도 좋은 권리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대세 드라마 우영우의 한 에피소드에서, 어린이들의 총사령관은 어린이들이 놀아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법정에서 외친다. 일견 식상한 말이지만, 그는 네 글자를 덧붙인다. '지금, 당장'. 어린이가 어린이로 존재하는 짧은 순간, 지금 당장이 아니면 의미를 잃는 행복이 있음을 그는 안다.

우리 법은 어린이에게,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받는 이들에게 법의 보호를 구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중을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언 변호사

- 법무법인(유한)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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