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낙농가가 매일유업과 빙그레 우유공장 앞에서 우유 원유(原乳) 가격 협상 재개를 촉구하는 규탄집회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유가공업체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라며 반격에 나섰다.
원유 가격 협상을 놓고 낙농가와 유가공업체들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양측의 입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밀크인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낙농육우협회 소속 낙농민 500여명은 이날 매일유업 평택공장 앞에서 원유 가격 협상을 요구하는 규탄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8일부터 이날까지 매일유업 평택공장 앞에서 시위를 전개했으며 오는 11일부터는 빙그레 도농(남양주)공장으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 소속 낙농민들이 매일유업 평택공장 앞에서 원유가격 협상을 요구하는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한국낙농육우협회] |
낙농가는 올해 사료값 상승 등으로 우유 원유 생산비가 올랐음에도 유가공업체들이 원유 가격 협상을 거부하면서 낙농가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 낙농육유협회는 남양유업, 매일유업, 빙그레 등 3사에 원유가격 협상 참여 여부를 질의한 결과 남양유업만 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며 매일유업과 빙그레를 규탄 집회의 타깃으로 지목했다.
낙농가의 단체 행동이 본격화되자 유가공업계도 반격에 나섰다. 유가공업체들은 낙농가의 규탄집회를 '영업방해'라고 규정하고 시위 중단을 촉구했다. 한국유가공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농가들은 기득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낙농제도 개선안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며 "현행 제도 하에서 유업체는 갑이 아닌 을인데도 낙농가들은 피해자인양 코스프레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가공업체들은 현행 제도인 생산비 연동제가 불합리하다고 보고 있다. 우유가 팔리지 않아도 농가가 생산한 원유를 구매해야만 하는 업체 입장에서 매년 생산비 명목으로 오르는 원유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현재 유가공업체들은 원유가 협상 조건으로 생산비 연동제를 폐지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새 제도인 용도별차등가격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내건 상황이다. 용도별차등가격제는 원유를 흰우유를 만드는 음용유와 치즈·버터 등을 만드는 가공유로 이원화해 가격을 차등적용하는 것이다. 국내 유제품이 수입산과 가격경쟁에 뒤처지는 점을 감안해 음용유는 가격을 유지하고 가공유 가격은 낮춰 부담을 줄이는 등 용도별로 물량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가공유 가격을 낮춰 국내 유업체들의 경쟁력을 보전하려는 조치다. 수입산 대비 국내 유업체들의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저하되고 있는 이유에서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으로 국내 우유 수요는 줄어들고 있지만 값싼 외국산 가공유 수입은 되려 늘고 있다. 실제 2000년 80.4%에 달했던 국내 우유 자급률은 수입산 제품에 밀려 지난해 45.7%로 하락했다.
외국산 유제품 비중은 향후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26년에는 미국과 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기 때문이다. 현행 미국과 유럽산 우유, 모차렐라치즈, 크림치즈 등의 관세율은 11~13% 수준이지만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 이후에는 0%대로 내려앉게 된다. 저렴한 외국산 유제품이 밀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국내 원유 가격은 매년 오르면서 국내 업체들이 생존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자료=농림축산식품부] 2021.12.30 dragon@newspim.com |
다만 낙농가는 원유값 결정 제도 개편에 전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 개편 없이 가격협상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유가공업계가 계속 협상을 거부할 경우 규탄집회 뿐만 아니라 '원유 납품 중단'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최근 2년 사이 배합사료가격이 31.5~33.4%, 조사료가격이 30.6% 폭등했다"며 "사면초가에 빠진 전국 낙농가들이 더 이상 못살겠다며 투쟁에 나선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밀크인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축산물 생산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유 생산비는 리터(ℓ)당 843원으로 전년비 4.2% 증가했다. 올해 리터당 47~58원 범위에서 인상 요인이 발생한 셈이다. 최소치인 리터당 47원으로 협상이 되더라도 지난해 상승분인 21원 대비 두 배 이상 원유 가격이 오르게된다.
이미 일부 업체들은 선제적으로 가격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푸르밀과 연세우유, 서울F&B 등 일부업체는 이달 1일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일부 가공유 가격을 10% 안팎으로 올렸다.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되고 있다며 올해 원유 가격이 결정되기도 전에 가격을 올린 것이다. 추후 원유 가격 인상분이 결정될 경우 빵, 아이스크림, 커피 등 식품 가격도 잇따라 오를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업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원유를 사들이고 있고 소비자가도 인상된 가격에 준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상생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제도개선을 동반한 원유가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rom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