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박두호 인턴기자 = "플로깅은 하체 운동이에요. 허리 숙여서 쓰레기를 주우면 허리에 부담이 갑니다. 런지와 스쿼트 자세로 쓰레기를 주워야 허리가 안 아파요"
직장인 권용운(33) 씨는 플로깅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플로깅의 효과와 팁을 설명했다. 플로깅은 스웨덴어로 '줍다'를 뜻하는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달린다'는 조가(jogga)의 합성어로, 산책 혹은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의미한다.
21일 인스타그램 게시물 통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플로깅 관련 콘텐츠는 12만1000여개다.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은 저마다 플로깅에 참여해 산과 바다, 공원 등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인증했다.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모임을 통해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쓰레기로 50L 마대 자루 10개를 꽉꽉 채운 사진을 올리며 '해변정화 플로깅'이라는 해시태그를 덧붙이기도 했다. 게시물에는 플로깅이 끝나고 카페에서 텀블러로 커피를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MZ세대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플로깅 모임이 확산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7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하는 플로깅 소모임에 참가했다. 해당 앱은 플로깅뿐 아니라 스포츠 활동을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는 플랫폼이었다.
[서울=뉴스핌] 박두호 인턴기자 =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골목에서 플로깅하는 모습. 2022.09.21 walnut_park@newspim.com |
참가자는 모두 7명이다. 참가자들은 집결지에 모여 각각 10L짜리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하나씩 들고 출발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반바지나 트레이닝 바지, 반팔 등 활동하기 편한 차림새였다.
◆ 담벼락 위부터 벽돌 틈까지…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담배꽁초
"담배꽁초를 정말 신박하게 버리네"
30대 직장인 김경민 씨는 얼굴을 찌푸린 채 담배꽁초로 쓰레기 봉투를 채웠다. 이날 한남동 거리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는 담배꽁초였다. 담벼락 위, 나무 아래, 횡단보도 앞, 벽돌과 벽돌 사이의 틈까지. 담배꽁초는 곳곳에 있었다.
[서울=뉴스핌] 박두호 인턴기자 = 수북이 쌓여 있는 담배꽁초를 집게로 줍는 모습. 2022.09.21 walnut_park@newspim.com |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집게로 이를 들어 올리던 우태준(25) 씨는 담배꽁초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우씨는 "회사 근처에도 담배 꽁초가 쌓여 있는 곳이 있는데 한두 명이 버리면 다른 사람들도 버리기 시작하면서 쌓인다"며 "매일 누가 치워주니까 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담배꽁초 다음으로는 커피 쓰레기가 많았다. 커피 전문점에서 사용하는 종이컵에서부터 플라스틱 컵 그리고 캔 등이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담배꽁초가 한가득 담긴 일회용컵도 있었다.
제일 고역은 내용물이 남아있는 커피 쓰레기였다. 커피가 남아있는 일회용컵들은 커피를 따라내고 버려야 했는데, 커피에 담뱃재라도 섞여 있는 경우에는 썩은 담배 냄새와 찌든 커피 냄새가 풍겼다. 김씨는 "한남동 골목은 깨끗할 줄 알았는데 구석구석에 담배꽁초랑 플라스틱 컵이 이렇게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 침수 등 각종 재해 유발하는 '작은 쓰레기' 중심으로
플로깅을 주최한 권씨는 큰 쓰레기보다 담배꽁초처럼 작은 쓰레기를 줍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가 오면 작은 쓰레기들이 빗물받이(배수구)로 모이기 때문이다. 빗물받이는 빗물이 하수관으로 빠지도록 거리 곳곳에 만든 시설인데 문제는 빗물에 쓸려 온 작은 쓰레기들이 빗물받이를 막아 배수를 방해한다.
지난 8월 폭우로 서울 강남 일대가 침수됐을 때도 배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길가에 버려진 작은 쓰레기들이 지목됐다. 이 쓰레기들이 빗물받이를 막아 배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것이 침수 피해를 키웠다. 습관처럼 버려진 쓰레기가 재난을 불러온 것이다.
플로깅을 하기 전날인 지난 16일에도 비가 왔다. 이 때문에 쓰레기가 빗물받이 주변으로 쓸려와 담배꽁초, 플라스틱컵, 스티로폼, 비닐 등이 빗물받이 일부를 막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한동안 빗물받이 주변에 쪼그리고 앉아 쓰레기를 치웠다. 찢어진 스티로폼은 빗물받이에 꽉 껴 있어서 손으로 빼내야 했다.
[서울=뉴스핌] 박두호 인턴기자 = 빗물받이로 쓸려 온 담배꽁초, 플라스틱, 스티로품. 2022.09.21 walnut_park@newspim.com |
김씨는 "스티로폼은 배수구를 꽉 막고 있어서 진짜 위험하네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손을 빗물받이 안으로 넣어 온 힘을 다해 꽉 낀 스티로폼을 빼내면서 "또 태풍이 온다는데 이거는 진짜 치워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참가자들 여럿이 달려들어 쓰레기를 치웠지만 빗물받이 안으로 들어간 쓰레기를 모두 빼낼 수는 없었다. 참가자들은 집게가 닿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쓰레기를 꺼냈다. 대학생 박유정(23)씨는 "골목 곳곳에 있는 쓰레기 치운다고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겠지만 배수구를 막고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건 침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1시간 동안 10L짜리 봉투 11봉지를 채웠다. 쓰레기 봉투를 중간중간 꾹꾹 밟아가며 채웠는데도 순식간에 많은 쓰레기가 모였다.
쓰레기를 주운 다음은 분리수거 시간이다. 모임장 권씨는 "플로깅의 끝은 분리수거"라며 "쓰레기를 다 줍고 분리수거를 하지 않으면 쓰레기를 줍는 이유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쓰레기를 담던 100L 봉투를 받아 재활용과 일반쓰레기로 분류했다. 집게로 주워온 쓰레기 봉투에서 플라스틱만 골라내고 남아있는 10L 봉투는 발로 밟아 그대로 100L 일반쓰레기 봉투에 버렸다. 카페에서 나온 쓰레기와 플로깅으로 주운 쓰레기를 합치자 100L 봉투로 2봉지가 가득 찼다.
[서울=뉴스핌] 박두호 기자 = 이날 7명이 주운 쓰레기 (위), 재활용과 일반 쓰레기로 분리수거 한 이후 모습(아래) 2022.09.21 walnut_park@newspim.com |
집게와 쓰레기 봉투를 제공한 카페 사장은 "우리 동네를 깨끗하게 해준다는데 고마워서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 인근은 담배꽁초가 정말 많은데 플로깅 덕분에 깨끗해졌다"고 말했다.
◆ 1시간 만에 땀 범벅…"하체 운동도 하고 보람도 느껴요"
플로깅이 끝나자 온몸이 땀 범벅이었다. 1시간 동안 총 1.58 Km, 2823보를 걸었다. 중간중간 멈춰 쓰레기를 줍다 보니 걸음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쓰레기를 줍느라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느라 허벅지에서 근육통이 느껴졌다.
문수현(28) 씨는 "평소 러닝이나 등산을 자주하는데 플로깅도 운동효과가 엄청나다"며 "하체 운동 제대로 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플로깅에 참여하면 혼자 운동을 계획하는 것보다 동기부여도 되고 보람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권씨는 "플로깅을 안 했으면 잠만 잤을 것"이라며 "주말 아침에 러닝을 하겠다고 하면 부담스러운데 사람들과 산책하면서 쓰레기 줍는다고 생각하면 부담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씨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운동도 하고 쓰레기도 주우니 소소하지만 뿌듯하다"며 플로깅의 매력을 설명했다.
heyj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