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최근 들어 미국 정부 부처 브리핑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주한미군 투입 가능성을 묻는 외신 기자들의 질문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다는 관측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지만 러시아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질서를 위협했고 중국이 22년 만에 발간한 '대만 문제와 신시대 중국 통일사업 백서'에는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고 통일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외신과 전문가들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재조명하게 됐다.
미국의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지난 8월 2~3일 대만을 방문한 것을 기점으로 미국의 의회대표단과 주지사들이 연이어 대만을 방문하면서 미·중 관계는 악화일로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고히 지지한다는 입장이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유사시 미군이 방어할 것이란 말을 수차례 언급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이 임박했나'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주일미군과 일본 항공자위대의 연합기지인 요코타 공군기지를 방문한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장병들과 나란히 서있다. 2022.09.29 [사진=로이터 뉴스핌] |
주한미군 투입에 대한 외신 기자들의 관심은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방송 인터뷰가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방송된 CBS '60분'에 출연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이 대만 유사시 방어할 것인가"란 앵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앵커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묻는다. 우크라 전쟁과 달리 미국의 남성과 여성 장병들이 대만을 직접 방어하는가"라고 재차 물었고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그렇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언뜻 들어도 이는 미국이 대만에 군대를 파견, 중국과 전쟁을 시사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 미국, 주한미군 재배치·한국군 지원 원할 수도
우리 정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갖고 긁어 부스럼을 피하려는 듯 크게 논평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미국 측 반응은 다르다. 종합하면 언제든지 한국에 주둔한 자국 군을 역내 군사작전에 투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7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주한미군 뿐만 아니라 어떤 해외 주둔 병력을 활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만 유사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군이 개입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받고 "주한미군은 한국의 주권을 방어하고 역내 미국의 국익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국 방어 뿐만 아니라 역내 미군 작전에도 투입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라이더 대변인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에 문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떠넘겼다.
미 국무부의 입장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군의 지원을 바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지난 26일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 기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CNN방송과 인터뷰한 내용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은 중국이 대만 침공 시 북한의 도발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대만 방어 지원을 바라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프라이스 대변인은 "우리가 대만인들을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대만인들과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동맹과도 마찬가지"라고 해 한국이 대만 방어 작전에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에둘러 표현했다.
[난징 신화사=뉴스핌]주옥함 기자=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 해협으로 장거리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2022.08.04 wodemaya@newspim.com |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후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해협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을 두고 주한미군에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란 전문가의 주장도 나왔었다.
대만 담강대학교 국제전략연구소의 린잉유(林穎佑) 부교수는 지난달 8일 대만중앙통신(CNA)에 "중국군의 황해(黃海)와 보하이(渤海)해 해군 훈련은 한국과 주한미군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다. 중국군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대만 관할의) 동부전구(東部戰區) 뿐만 아니라 모든 전구가 움직일 것이란 경고"라고 주장한 바 있다.
◆ "한국, 대만 유사시 중국과 대립 피할 수 없다"
주한미군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침략 억제 역할을 하지만 잠재적인 역할은 한국 방어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06년 1월 제1차 '한미 동맹 전략대화'에서 한미가 공동선언문으로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은 미국이 세계 어디서든 유사시 신속 대응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미군을 유연하게 배치할 수 있게 한다.
당시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되, 미국은 한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국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합의했지만 말그대로 존중(respect)이지, 강제성을 갖는 합의가 아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대만 방어 작전에 재배치한다고 해도 한국은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이 외세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때 미군이 지원한다는 내용일 뿐 미군이 항시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로이터통신은 '2만8000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 대만 충돌 피하기 어렵다' 제하의 분석 기사에서 "북한은 중국과 상호방어조약을 체결하고 있다. 미군이 대만을 방어한다면 북한이 중국을 지원하거나 자국의 군사 목표를 이루려고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한미군이 대만 작전에 투입된다면 북한의 한국 침략 억제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노동신문] |
일각에서는 한국이 자국 군 일부를 파병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주 한미연구소(ICAS) 대담에서 "한 지역에서 발생한 일은 매우 빠르게 역내로 퍼지고 전 세계로 확산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베트남전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에서 미군을 지원한 일을 언급하면서도 "향후 한국군이 지원할지 여부는 한국이 결정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는 지난 2월 중순 분석 기사에서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일도 한국의 대만 방어 작전 지원 가능성"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이 미국의 대만 방어 작전을 지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한국까지 미국 편에 선다면 "대만 침공의 명분이 약화할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 계획에 큰 영향이 된다"는 설명이다.
스팀슨센터는 "한국은 극심하게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미국과는 군사 동맹, 중국과도 국가 안보와 통일 사안에서 없어선 안 될 이웃국이어서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할 수록 한국이 대만 등 문제에서 영구적으로 피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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