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은혜 기자=저축은행들이 장기 자금 조달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정기예금의 단기(1년) 상품 금리가 중장기(2·3년)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10여년 전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재차 높아지자, 장기 자금 조달은 피하고 대신 부실에 대비한 단기 자금을 유치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서울 여의도 63아트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단지 모습. 2022.07.14 mironj19@newspim.com |
4일 저축은행중앙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저축은행 정기예금 1년 만기 상품의 평균 금리는 3.88%, 2년은 3.86%, 3년은 3.84%로 1년이 가장 높았다. 개별 상품을 살펴봤을 땐 삼호저축은행 정기예금의 1년 만기는 4.15%, 2년과 3년은 각각 3.70%로 그 차이가 0.45%포인트(p)까지 벌어져 저축은행 중 가장 컸다. 대신저축은행의 '스마트정기예금', '더드리고정기예금', '정기예금'의 1년 금리와 2년, 3년 상품의 금리 차이도 0.40%p까지 벌어졌다. 이 외에도 1년 만기 상품이 2년, 3년 상품보다 0.1~0.2%p 벌어진 상품이 곳곳에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1~3년 상품의 금리가 모두 같은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통상 예적금 상품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저축은행의 정기적금 상품의 평균 금리는 1년 3.04%, 2년 3.16%, 3년 3.22%로 만기가 길수록 더 높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금리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들을 유치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이러한 현상이 적금보다 예금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저축은행이 판매하는 상품의 90%가 예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저축은행의 금리 경쟁이 치열해진 이유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서 경쟁력이 밀린데다 주력 운용처인 부동산 PF에서 부실이 발생한 우려가 커진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상반기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의 PF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원으로 지난 2014년 이후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연평균 14.9%의 증가세를 이어왔다. 저축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익스포저 비율은 79.2%로 2010년 말(260.7%)보다 크게 낮아졌지만 은행(12.9%), 보험(53.6%), 증권(38.7%)보다 높았다. 특히 5대 저축은행(SBI·OK·한국투자·페퍼·웰컴)의 PF대출 규모는 2조80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6% 증가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미국 중앙은행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인상에 제동을 건 상황에선 현재의 고금리를 감수하면서 장기 자금을 확보하는 것보다 단기 대응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동산 호황기에는 부동산 PF에서 수익을 낼 수 있으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장기화되고 자산가격이 하락해 미분양이 늘면 손실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장기자금 조달에 한계를 느끼는 원인"이라며 "내년에 금리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추이를 지켜본 뒤 다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국은행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에 대한 건전성 관리 강화를 요구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저축은행, 증권사, 여전사는 아파트 외 주택 및 상업용 시설에 주로 대출했으며, 규모별로는 저축은행과 증권사 등이 중소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PF 대출을 취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주택가격 하방압력이 커지면서 사업추진 불확실성 증대, 미분양 물량 증가 등으로 PF 대출의 부실 위험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유동성이 낮은 일반주택 및 상업용 시설 관련 PF 대출 비중이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어 부실화가 발생하면 실질 손실규모도 예전보다 커질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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