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업계가 극심한 한파를 겪고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사업 환경이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업계 전반으로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악재가 계속되면서 통상 창업 3~5년차에 찾아온다는 '데스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 도래 시점도 짧아지고 있다. 닷페이스·라이픽·유저해빗 등의 유명 스타트업이 올해 폐업을 결정한데 이어 '부릉'의 운영사 메쉬코리아도 결국 이달 초 경영권 매각을 택했다. 뉴스핌은 한국의 신성장 엔진인 스타트업 업계의 위기와 대안을 살펴봤다.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정부에 의존해서는 안되지만 지금 시기에 자금줄이 끊겨서는 안될 일입니다."
한 벤처기업 대표의 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긴축재정 기조로 일관하며 실제 벤처투자에 대한 출자나 추가 지원을 줄이면서 사실상 벤처업계는 정부와 민간이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닌지 불만을 토로했다.
[생사기로 벤처] 글싣는 순서
1. 빨리 찾아온 '죽음의 계곡'...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스타트업들
2. '증시→IPO→벤처'...도미노식 돈줄경색 심각
3. 자금난에 '임상 보류'...바이오, 성장 동력 타격
4. 위축된 벤처 투자 생존법…인센티브·해외 자금 유입 '방점'
5. '유동성 공급', 기업구조혁신펀드 지원에 그쳐
6. 강삼권 벤처기업협회장 "규제완화·해외진출 정부 지원 절실"
그렇다고 정부도 곳간을 털어서 벤처투자에 '올인(All-in)'하기에는 경제 전반에 적색등이 켜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 윤 정부 들어 '선택과 집중'으로 방향을 틀었으며 시장에 투입될 자금이 마르지 않도록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어낸다는 데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다.
◆ 긴축 재정 속 줄어든 모태펀드 출자…'혹한기는 내년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8월 말께 국회에 총 13조6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제출했다. 이는 올해 본예산인 19조원 대비 28% 이상 줄어든 규모다.
범정부 차원에서 긴축재정 기조에 있다보니 중기부 예산 역시 축소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중기부 자체적으로도 당초 14조원 수준으로 낮춰 예산을 요구했는데 이보다도 500억원 가량 줄어든 규모로 예산안이 책정됐다.
예산안을 살펴봐도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벤처스타트업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 모태펀드의 축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내년도 모태펀드 출자규모는 3135억원 수준이다. 올해 대비 39.8%나 내려앉았다. 최근 모태펀드 출자금액을 보면 ▲2017년 8300억원 ▲2018년 4500억원 ▲2019년 2900억원 ▲2020년 1조원 ▲2021년 1조700억원 ▲2022년 5200억원 등이다.
벤처업계로서는 내년이 투자 혹한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투자의 승수효과가 있다보니 투자효과가 더 커지는 상황"이라며 "벤처캐피탈(VC)이 자금을 별도로 모으는 것보다는 부담이 적기 때문에 투자가 원활한 게 모태펀드인데 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무턱대고 투자처를 늘리거나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모태펀드 자금이 축소된 것에 대해 투자 위축이 예고된다는 말에 중기부는 오히려 반박하고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정부에서 올해 절반이 삭감됐고 이번에는 1700억~1800억원이 추가로 삭감된 것"이라며 "삭감을 하게 된 이유는 국가 재정의 건전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모태펀드가 줄어서 투자를 못하는 결과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며 "대내외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현재 돈이 쌓여도 투자를 하지 않다보니 이럴 때는 정책자금으로 연결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스타트업 관련 전문가들도 현재 벤처캐피탈이 보유한 자금이 부족해서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는 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강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창업벤처연구실장은 "기본적으로 벤처캐피탈이나 관련 플랫폼 대표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투자금이 없다기보다는 고환율·고금리 등 상황에서 투자가 위축될 것을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며 "투자 단계에서 후속 투자는 규모가 크다보니 포트폴리오 구성이 어려워 이런 부분에서 선뜻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민간의 자금 선순환…해외 자금 유입 등 전방위 자금 수혈 집중
중기부 역시 거시 경제의 악재에 대해 선제적인 정책 마련에 나설 참이다. 모태펀드 출자규모가 축소됐지만 시장에 투자금이 마르지 않도록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기부는 다음달 초 '벤처스타트업 시장 활성화 대책(가칭)'을 통해 줄어든 모태펀드의 틈을 채울 예정이다. 규모가 줄었어도 선호도가 높은 모태펀드의 신규 운용사 선정을 두고 실제 원활한 투자에 나섰거나 향후 나설 수 있는 벤처캐피탈을 선별할 계획이다.
기존 모태펀드 운영사와 벤처캐피탈이 그동안 펀드를 결성하고 신속히 적시에 자금을 집행할 수 있는 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게 중기부의 복안이다. 실제 모태펀드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벤처투자가 모태펀드 운용사를 선정할 때 ▲펀드 조기 결성 능력 ▲투자집행역량 ▲사후관리역량 ▲수익률 등을 살펴본다. 여기에 신속투자 역량이 추가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선정 기준은 적시에 투자를 해서 시장에서 자금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노력상'으로 풀이된다.
이밖에도 10대 초격차 분야에서도 1000개에 달하는 스타트업 발굴 역시 기대된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8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열린 '컴업2022 기자브리핑'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 2022.10.18 victory@newspim.com |
여기에 중기부는 민간 중심의 창업생태계 조성에 힘을 더욱 실어줄 예정이다. 다음달 9~1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컴업(COMEUP) 2022'을 통해 신호탄을 쏘아올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처음으로 민간주도로 개최해 5년 안에 온전히 민간이 주도하는 스타트업 축제로 키운다는 게 중기부의 입장이다.
이영 장관은 "불모지에서 없는 것을 만들 때는 정부 주도로 하는 게 효과적이지만 갈수록 경직되다보니 속도감에 문제가 생긴다"며 "지원도 과하면 선의의 규제가 될 수 있고 스타트업이 파이를 키우고 성장 속도를 가속화하는 데 정부가 가로막는 손을 놔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컴업의 경우, 국내 최대의 스타트업 행사일 뿐더러 국제적인 관심도 부쩍 늘고 있다. 중기부는 컴업이 국내 투자사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닌, 글로벌 투자사들의 국내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로 바라보고 있다. 컴업이 5년 안에 세계 5위 안에 들어가는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로 만든다는 게 이영 장관의 포부이기도 하다.
중기부는 해외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방안 찾기에도 팔을 걷고 있다.
이미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피어17에서 열린 '한미 스타트업 서밋'을 통해 정부 모태펀드와 미국 벤처캐피탈의 3000억원 공동펀드 조성을 약속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Pier17에서 열린 한미 스타트업 서밋에서 스타트업 데모데이 2부(KSCxMTB)가 진행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2022.09.22 photo@newspim.com |
그는 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의 막대한 오일머니를 국내 투자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도 힘 쓰는 중이다.
뉴욕 서밋 현장에서 이 장관은 "막대한 오일머니를 국내 스타트업 투자로 유도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 내년 1분기에 중동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행사를 계획중"이라고도 말한 바 있다.
강재원 실장은 "어려운 경기 여건에서 초기 투자나 중기 투자까지는 국내 벤처캐피탈이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이를 키워 엑시트하기에는 더 큰 규모의 자금을 투입할 해외투자사가 나서야 한다"며 "결론적으로 국내 스타트업의 경쟁력에 따라 투자 여부가 갈릴 것이고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 등이 국내 예비유니콘 등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다면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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