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해 구제역 피해를 입힌 농가가 살처분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이를 두고 지방자치단체가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강원도 철원군이 A씨 등 4명을 상대로 한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환송했다.
지난 2015년 돼지 사육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돼지 이동제한명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세종시에서 돼지 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피고들이 이를 어기고 강원도 철원군에 있던 B돼지 농장으로 돼지 260마리를 이전시켰다.
결국 B돼지 농장에서도 구제역 의심 증상이 나타났고 총 618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 철원군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피고들에게 각각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안정자금을 지급했다. 이후 이러한 경위를 알게된 철원군은 피고들이 이동제한명령을 어겨 손해가 발생했다며 원고가 지출한 살처분 보상금 등을 배상하라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세종에서 사육중인 돼지들이 구제역 확산을 위한 이동제한명령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위반하여 돼지를 반출 및 중개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이와 같이 무단으로 반출된 돼지로 인해 철원군 농장에서 사육하던 동물들이 모두 살처분되는 손해를 입게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구제역 발병 농가 및 그 인근 농가에 이동제한명령을 내리는 것은 구제역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이를 위반하여 다른 농장에 돼지를 반출하는 행위와 돼지를 반입한 농장에서 받게 될 살처분 사이에는 상당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피고들은 공동하여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급한 원고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1억730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한 살처분 보상금, 생계안정비용 등은 모두 불법행위의 직접적 대상에 대한 손해로서 통상손해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이동제한명령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지방자치단체인 원고가 이러한 규정을 들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가 가축 소유자에게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이다"며 "이 사건에서 가축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피고들의 이동제한명령 위반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원고가 다른 법령상 근거 없이 피고들을 상대로 살처분 보상금 등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구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심의 판단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에 있어 상당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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