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국내 철도 제조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후발주자인 우진산전이 업계 1위로 껑충 올라섰다. 최근 3년간 수주 총액이 1조원을 넘어선 업체는 우진산전이 유일하다. 업계 1위였던 현대로템은 '꼴등'으로 밀려났다. 저가 수주 경쟁이 치열해진 탓으로 풀이된다.
최근 3년간 철도 제조업체 시장 점유율 비교 |
27일 철도 업계에 따르면 우진산전은 2020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3년간 총 1조1945억원의 수주를 따냈다. 같은 기간 시장 전체 발주 규모는 2조2674억원. 발주량의 절반 이상(53%)을 우진산전이 수주한 것이다. 다원시스가 7317억원(32%)으로 뒤를 이었고, 현대로템이 3412억원(15%)으로 가장 저조한 성적을 올렸다. 우진산전과 현대로템의 수주 격차는 3배 이상 벌어졌다.
우진산전은 2010년 설립된 철도차량 부품 관련 제조기업으로, 2019년 중전철 자동차 수주전에 본격 뛰어들었다. 전동차 시장선 '늦깎이'로 불린다. 우진산전이 단기간 업계 1위를 꿰찬 비결은 '최저가 입찰제'에 있다.
현행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근거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경쟁입찰에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업체 순으로 낙찰자를 결정한다.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력·품질확보까지 검증한다는 이유로 2단계 경쟁입찰을 시행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지 오래다. 허술한 평가 지표 탓에 기술·품질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최저가 입찰재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우진산전이 가격 경쟁력으로 발주 물량을 싹쓸이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시장의 지각변동은 실제 통계서도 수치로 드러난다. 2015년~2017년 현대로템이 총 7848억원을 수주할 당시, 다원시스와 우진산전의 수주 규모는 각각 2314억원, 792억원에 그쳤다. 그러나 저가 수주 경쟁이 본격화한 2020년부터 현대로템은 왕좌를 내려놨다. 당시 현대로템은 752억원을 수주한 데 그친 반면, 우진산전은 6599억원, 다원시스는 2697억원을 수주했다.
현대로템은 사실상 전동차 수주 경쟁에서 빠진 모양새다. 소규모 전동차 물량만 간헐적으로 수주하는 형식으로 철도 사업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현대로템이 수주한 사업은 2020년 서울 9호선 48량과 2021년 대구권 광역철도 18량, 충청권 광역철도 16량 등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치열해진 저가 수주 경쟁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저가 수주 관행이 기업의 적자 악순환, 부품 외국산 의존도 심화 등으로 이어져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불편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설계와 공장 생산 등 능력치를 초과하는 과다한 수주로 인해 납기가 지연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며 "차량 인도 및 신차 교체가 늦어지는 등 업계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철도 주 발주처인 한국철도공사의 업체 평가지표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평가 100점 만점 중 85점 이상 득한 입찰자가 규격 적격자로 선정된다고 하는데, 입찰 참여 업체 대부분이 70점가량을 기본 점수로 가져간다. 기술평가가 의미없다는 것"이라며 "코레일의 입찰 구조에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철도안전과 국내 철도산업 보호를 위해서라도 고속열차 계약제도를 2단계 최저가 입찰방식이 아닌 합리적인 종합평가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cho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