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의 112신고 부실 대응 사실이 드러나면서 법조계는 국가배상책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2일 경찰청이 공개한 112신고내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 첫 신고가 이뤄진 이후 사건 발생 전까지 압사 위험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11건이 접수됐다. 당시 경찰은 "출동하겠다", "확인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단 4건의 신고에만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112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며 경찰의 부실 대응을 시인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 의견이 엇갈리던 상황에서 경찰 책임론이 급부상한 것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사고' 관련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2022.11.01 yooksa@newspim.com |
이에 대해 법조계는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경찰은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는 직무를 수행한다"며 "112신고가 접수된 순간 경찰은 현장에 출동할 구체적인 의무가 발생한 것인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상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면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경찰력은 투입됐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종흔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연수원장)도 "경찰은 사고 발생 전 11건의 신고가 접수됐는데도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며 "경우에 따라 중과실이 인정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경찰은 관련 매뉴얼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매뉴얼이 없다고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도리어 매뉴얼을 만들지 않은 것이 잘못일 수 있고 매뉴얼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자주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부실대응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례도 있어서 이번 참사와 관련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확률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대법원에서는 경찰이 출소한 범죄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발생한 이른바 '중곡동 주부 살인 사건'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편 당시 사고 현장에서 일부 시민들이 고의로 사람들을 밀었다는 목격담이 계속 나오자 경찰에서는 현장 일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경위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 결과 목격담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들을 대상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황 교수는 "고의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민 것이 아니라고 해도 당시 사람을 밀면 크게 다칠 수 있겠다는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폭행치사나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