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내년 3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강모(35) 씨는 최근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신축빌라 전세 계약을 했다. 향후 서울에서 나오는 분양단지에 청약을 넣기 위해서다. 다만 혼인신고는 최대한 미룬다는 계획이다. 강씨는 "아직 자금도 부족한 상태고, 청약에 당첨이 된다해도 금리가 너무 높아져 대출을 받아 이자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면서 "맞벌이하면서 아끼고 절약하면서 돈이 좀 모이면 혼인신고하고 신혼부부 특공을 노려보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11월 결혼한 이모(37) 씨 역시 아직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원하는 아파트가 분양할 때까지 최대한 늦추려는 것이다. 이씨는 "매일 부동산 관련 카페를 들여다보며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시기를 재고 있었는데 늦어도 내년 분양이 예정돼있다고 해서 올해안에 혼인신고를 하려 한다"면서 "결혼 직후 혼인신고를 했다면 내년에 혼인기간 3년을 넘겨 청약 점수가 깎였을 것"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030세대에 대한 주택 특별공급(특공) 당첨을 위해 혼인신고를 늦추는 '꼼수'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신혼부부 특공'을 노리고 청약자격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동시에 청약 조건과 자금 마련 시간을 벌기 위해 혼인신고를 늦추는 경우는 이미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가 미혼 청년을 위한 특별공급을 신설하자 또 다른 특공 신청 기회를 차지하려는 '사실혼' 부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의 내집 마련 지원을 위해 미혼인 상태에서 청약 신청이 가능하도록 한 정부의 의도를 역이용해 '미혼 청년 특공'과 '신혼부부 특공' 두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혼인신고를 미루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 셈이다.
여기에 최근 높은 금리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청약 시장 분위기 마저 가라앉으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세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원하는 아파트의 분양시기가 도래하지 않았거나 급격하게 높아진 분양가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등 특별공급(특공) 당첨을 위해 전략적인 수를 모색하는 것이다.
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결혼 직후 혼인신고를 바로 하지 않고 미루면서 미혼 청년 특별공급을 통해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신혼부부들이 나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근 미혼 청년 특별공급을 노리고 혼인신고를 늦추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서울의 한 결혼식장 모습 [사진=서울시] |
◆미혼 청년 특공 노리는 신혼부부…혼인신고만 안하면 가능
정부는 향후 5년간 19~39세 미혼청년을 대상으로는 한 특공을 최초 도입해 5만2500가구를 공급한다. 연내 첫번째 사전청약이 실시될 예정이다.
청약에 당첨된 이후 결혼을 하더라도 퇴거 등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신혼부부 특공으로 당첨된 이후 이혼하더라도 집을 회수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이 때문에 많은 신혼부부들이 미혼 청년 특공에 신청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굳이 신혼부부 특공을 신청하지 않아도 특공 기회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이와 소득 조건만 맞는다면 이를 제재할 방안은 아직까지 미비한 상태다.
올해말 30세 동갑인 예비부부가 결혼을 한다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채 각자 최대 39세까지 미혼 청년 특공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기간 동안 당첨이 되지 않았다면 40세에 혼인신고를 해 7년간 신혼부부 특공으로 청약을 신청할 수 있다. 혼인기간은 혼인신고를 한 날부터 계산된다는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혼인신고를 늦춰 가면서까지 미혼 청년 특공에 신청하려하는 모습을 보면 집값에 대한 부담감에 현실적인 걸 고려해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서 "시장이 급등하면서 젊은 세대나 청년들이 나라에서 주는 주택 외에는 희망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주택이 어떤형태로, 어떤 유형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혼인신고를 미루던지 결혼을 미루는 사례가 나올 것 같다"면서 "제도가 마련돼 있다해도 사실상 이러한 꼼수를 완벽하게 막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내집 마련 위한 전략적인 수...'꼼수' 피해자 양산 우려도
최근 급격하게 상승한 금리와 높게 책정된 분양가 역시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미루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특공에 당첨된다 해도 준비된 자금이 없다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판단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자금 마련 시간도 벌 수 있다.
청약 점수를 높이거나 자금 마련을 위해 늦추는 경우도 많다. 혼인신고를 한 시점부터 기간에 따라 점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3년 이하는 3점, 5년 이하는 2점, 7년 이하는 1점이다. 또 자녀가 있을 경우 3명 이상 3점, 2명 2점, 1명 1점이다.
점수제가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신혼부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일부 개정안 시행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의 30%를 추첨제로 공급하기로 했다. 소득이나 자녀수, 혼인기간에 관계없이 당첨 기회를 확대한 것이지만 여전히 젊은 세대 사이에선 혼인신고를 미루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위해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청년주택의 유형이나 형태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신혼부부들의 미혼 청년 특공 신청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신혼부부들은 미혼 청년 특공을 신청할 수 없어 상대적 차별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각에선 신혼부부 특공 조건 가운데 혼인신고 이후 7년 이내만 신청이 가능한 조건을 더 늘리거나 공급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결혼한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미혼 청년특공을 신청해도 이를 걸러낼 수 있는 방안은 없다"면서 "첫번째 사전청약시 관련 방안을 발표하려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