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민 기자 =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국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줄줄이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만이 이 같은 행보에 동참하지 않고 예정된 생산과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효율적인 수익구조와 높은 현금 보유율 등이 이 같은 전략을 가능케했다고 분석한다. 내실에 대한 자신감으로 '치킨게임'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해석도 뒤따른다.
◆삼성전자 "인위적 감산? NO"...SK하이닉스·마이크론·키옥시아는 공급 축소 나서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2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결정했다. 2022.10.27 hwang@newspim.com |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둔화 상황 속에서도 감산 또는 투자 축소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최근 진행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서 "이달 초 테크데이에서 인위적인 감산은 고려치 않는다고 했는데 이 입장엔 변화가 없다"며 "단기적으로 수급 균형을 위한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 역시 계획대로 진행한다.
그는 "중장기 수요를 위해 적정 수준의 인프라 투자는 지속할 계획"이라며 "다만 시설투자(캐펙스)가 직접적으로 내년 생산량으로 직결되지는 않고 현재의 인프라 투자는 중장기적 수요 대응을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저조한 수요로 '비상'에 걸려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일본 키옥시아 등이 감산과 투자 축소 계획을 밝히며 공급 축소에 나선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26일 진행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내년엔 올해 연말까지 투자할 투자액 대비 50% 이상 캐펙스 감소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D램과 낸드플래시 영역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투자 감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불황 속 투자 기조 유지는 삼성이 커 온 역사"...3분기 기준 높은 현금 보유율도 강점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2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결정했다. 2022.10.27 hwang@newspim.com |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탄탄한 수익구조와 높은 현금 보유율이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감산을 하지 않고 투자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을 하나로 꼽아 설명하긴 어려운 감이 있지만, 삼성전자는 전통적으로 양산 단계에서 제품의 단가를 낮출 수 있는 효율적인 생산 구조를 가져 원가 경쟁력이 높은 상황"이라며 "그게 삼성이 커 온 역사고, 불황 분위기로 반도체 업계에서 투자를 줄일 때 삼성전자는 늘 계획대로 생산과 투자를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생 직후에도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대형 반도체 기업들이 감산 등 계획 수정을 발표했을 때 삼성전자만이 투자 기조를 유지했고 그 결과 타 기업에 비해 더 빠르게 손실을 보전할 수 있었다.
타 기업들이 투자 감소 등으로 생산량을 줄였을 때 삼성전자는 생산량을 늘렸기 때문에 빨리 시장 상황에 대처하고 회복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번에도 높은 작업력을 바탕으로 일정 부분 손실과 수익 감소를 감안하면서라도 계획대로 생산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128조8199억원에 달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삼성전자는 현금 보유율이 높아 타사에 비해 버틸 수 있는 여력이 높다"며 "지금 같은 고금리 시대엔 타 기업들의 경우 돈을 빌려와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에 투자를 지연하거나 줄일 수밖에 없지만 현금 보유율이 높은 삼성전자는 망설일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소 업체 사라진 '반도체 치킨게임' 재현 가능성도
한편 반도체 치킨게임이 재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 2007년 대만 D램 업체들이 제품 생산량을 늘리며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이를 시작으로 반도체 업체들이 앞다퉈 가격인하에 나서고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 겹쳐 512메가비트 DDR2 D램 가격이 2009년 0.5달러 수준까지 떨어지게 됐다. 최고가 6.8달러까지 올라갔던 제품의 가격이 걷잡을 수없이 폭락한 셈이다. 이후 1기가비트 DDR2 D램의 가격도 0.8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며 D램 업체들의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결국 2009년 독일의 D램 메모리 반도체 업체 '키몬다'가 파산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이후 2010년 대만과 일본 기업들을 중심으로 생산설비와 투자 증산 경쟁이 시작되며 또다른 '치킨게임'이 발발했다. 1기가비트 DDR3 D램 가격이 2010년 10월엔 1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고, 일본 D램 업체인 '엘피다'가 결국 경영권을 미국의 '마이크론'으로 넘기며 치킨게임이 끝났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과거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높은 수율을 바탕으로 살아남은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그런 삼성전자가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투자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치킨게임에 불을 붙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에도 투자를 줄이지 않고 공격적 투자를 한다는 게 삼성의 전략이지만, 과거 반복됐던 치킨게임이 재현될 가능성 역시 열어둬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catchm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