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구체적인 범죄의 내용은 몰랐더라도 탈법행위임을 인식하고 본인 명의의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한 경우 금융실명법 위반죄의 방조범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방조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앞서 A씨는 성명불상자 B씨로부터 '고객이 입금한 돈을 인출하여 환전소 직원에게 건네주면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듣고 이를 승낙하여 본인 명의의 계좌정보를 B씨에게 알려줬다.
그러나 B씨는 실제로 불법환전 업무가 아닌 보이스피싱 범죄의 편취금을 은닉하기 위해 A씨의 금융계좌를 이용했다. A씨는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여 이를 방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방조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이므로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정범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며 "피고인에게 정범이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다는 점에 관한 고의가 있는 경우에만 방조의 죄책을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인식한 '고객이 입금한 돈을 인출하여 환전소 직원에게 전달해 주는 업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법률에 의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탈법행위인지 특정되지 않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의 계좌로 금융거래를 한다는 점에 관한 고의가 있었음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은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행위로 정범의 고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도 족하다"고 인정했다.
또한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환전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춰 등록을 해야 하는데 무등록 환전영업을 하기 위해 타인의 금융계좌를 이용하여 거래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에 해당하는 무등록 환전영업을 하기 위해 타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 한다는 것은 인식했음에도 이를 돕기 위해 자신 명의의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했고 성명불상자는 이를 이용하여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을 통한 편취금을 송금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즉, 피고인이 성명불상자가 목적으로 삼은 탈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원심 판결에는 이러한 탈법행위의 의미와 방조범의 정범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통해 정범이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인 피고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금전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금융계좌 정보를 알려준 경우, 정범의 실제 목적이 무등록 환전 영업이 아니라 전기통신금융사기 편취금의 은닉이었다고 하더라도 금융실명법위반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불법적인 금융계좌 정보 제공행위를 근절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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