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시행된 중대재해채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내달 27일로 시행 1년을 맞는다. 산업 재해를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당시 기업 과잉 처벌과 입법 실효성 우려도 적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실제 법이 시행된 지난 1년간 우리 일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총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약 1년간 자동차 제조업계는 안전관리체제를 대폭 강화했다. 안전책임본부를 신설하고 관련 전문인력을 대거 영입·확충하거나 사내 안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크고 작은 노력들을 이어왔다.
[중대재해법 1년] 글싣는 순서
上. 안전가드 올린 車업계...'허위 산재'에 골머리도
中. '타깃될라' 철강·중공업도 안전관리 총력전
下. 검찰 송치 217건···불명예 1위 기업은
◆ 현대차·기아, 안전보건 총괄본부 신설…실효성 자체진단도
현대차·기아는 안전보건 총괄본부인 CSO(Chief Safety Office)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사회적 안전망 강화 흐름에 따라 올해 1월 본사와 생산공장, 연구소 등 기존 안전조직을 확대하고 CSO(Chief Safety Office) 본부를 신설했다. 안전 최우선 경영 실천을 위한 각종 정책을 수립·추진하는 조직이다. 공장별 안전보건팀과 생산부서 안전추진자, 안전부문 상시점검반 등을 본부 산하 현장 안전보건 전담조직으로 두고 있다.
CSO 본부는 국내생산담당 이동석 대표이사가 이끌고 있다. 현대차는 전 사업 부문 경영책임과 안전보건 총괄책임을 맡기기 위해 3월 이동석 당시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는 CSO본부와 관련 전문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고 있다. 안전 예산도 전년비 증액했다. 인터록, 적외선센서 등 자동화설비 방호장치를 늘렸고, 환경설비 개선 등 환경분야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데도 예산을 집중 투자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
현대차·기아 CSO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일명 '부재자'를 줄이기 위한 전사적인 노력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부재자란 업무 중 상해 등을 입어 자리를 비운 이들을 의미한다. 그는 "산재율을 확실하게 줄이겠다는 방침 아래 사업장별 부재자율을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경영진이 이 부분을 집중관리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대차는 제도 실효성을 평가하기 위해 자발적인 진단에 나서기도 했다. 7개월에 걸쳐 전문가·학계와 협력해 제도 심층진단평가를 실시했다. 현대차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조직, 인력, 교육, 노사관계, 문화 등 전반적인 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미국과 독일 등 해외 선진기업 사례도 연구했다.
이 결과 실제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현대차 측은 "CSO본부를 중심으로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해 각 사업장별 원료와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부문의 주관 조직을 구성하고 체계적인 예방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중대시민재해 반기별 이행평가를 진행해 CSO 체계의 중대산업재해는 물론, 중대시민재해 예방관리 체계를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내년에도 안전 관련 예산을 확대해 인력과 감시관리망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차 측은 "자율 안전문화와 풍토 조성을 통한 근로자 인식 제고를 위해 다양한 안전문화 컨텐츠를 개발하는 등 현장 안전 이행력도 높이겠다"고 했다.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
◆ 한국지엠, 매달 안전점검위원회(SRB)서 이슈 점검…산재율 전년比 18%↓
한국지엠은 사내 문화 속 안전의식을 정착시키기 위한 각종 노력을 이어왔다.
한국지엠은 올해 2월 웨인 오브라이언을 부사장을 최고안전책임자(CSO)로 선임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직후다. 오브라이언 부사장은 2010년부터 한국지엠 현장 안전관리를 전두지휘해 온 '안전통'이다.
한국지엠은 현재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위원회(SRB·Safety Review Board)를 연다. 매달 전 직원들이 모여 각종 안전정책지침 이행률과 실효성, 보완사항 등을 점검하는 자리다. 또 직원 각 개인에게 작업장 책임구역을 맡겨 안전 보완사항을 발굴 ·개선하는 세이프티맵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안전 관련 이슈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세이프티토크' 시간을 매 회의마다 가지거나 작업장 내 차량주행속도를 30km/h에서 20km/h로 줄이는 등 등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문화를 정착시켰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한국지엠은 최근 1년간 6900여 건에 달하는 안전사고 요소들을 대거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11월 기준) 산재율을 전년비 18% 줄였다는 설명이다.
한국지엠 측은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른 특별한 변화라기보단 안전과리망을 점차 강화해나가는 흐름으로 봐달라"며 "중대재해법 시행 후 관련 조직을 신설하거나 인력을 대대적으로 늘리진 않았지만, 안전한 사내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상당히 많이 해왔다"고 설명했다.
인천시 한국지엠 부평공장 인근에서 신차를 실은 트레일러가 오가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 '산재? 허위신고 아니냐' 노사, 날선 신경전도…"상호 감시망 강화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벌어진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일부 제조사에선 이른바 '허위 산재' 신고가 늘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A 완성차 제조사의 안전관리 담당자는 "한 달에 한 건 가량 산재 사고가 접수되는데, 작업 유관성이 상당히 낮은 신고 접수가 더러 있다"며 "길을 걷다가 문에 부딪쳐 얼굴에 상해를 입었다는 신고부터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등 각종 질환을 산재 처리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업무 유관성이 낮은 경우가 많아 이를 판별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고충도 전했다.
해당 제조사의 생산공장 평균 부재율은 대략 2~3% 수준. 이달 기준 작업장 근로자 1000명당 부재자는 28명이다. 상해 등으로 인한 산재 판정을 받고 작업 현장에 출근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킨다. 최근 일년 새 산재 여부를 놓고 노사 간 진실 공방이 심심찮게 벌어지자 해당 회사는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절차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산재 판정을 받을 경우 부재 기간 임금을 평시 대비 130% 수준으로 받게 된다"며 "중대재해법 등으로 회사가 안전 이슈에 예민해진 것을 악용하는 사례가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B 완성차 제조사 관계자는 이 같은 작업 현장 분위기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악용하려는 사례라고 단정짓긴 어렵지만, 노사 모두 작업 안전성에 예민해진 만큼 상호 감시체제도 한층 강화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허위 산재로 골머리를 앓는 부분도 생겼지만, 그만큼 노사가 안전에 한층 신경 쓴다는 측면에선 마냥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라고 봤다.
cho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