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바다가 변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갈수록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정책에 대한 특집 기사를 다루며 내건 제목이다.
이 표현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부국장을 지낸 클레테 윌렘스의 언급이기도 하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외교안보팀들은 이제 과거와 달리 중국의 도전을 '국가 안보 자체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새로운 차원의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은 중국을 위협적인 패권 경쟁국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개방과 경제 발전을 지원하며 향후 글로벌 무대에서의 동반자 또는 조력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해온 측면이 강했다.
물론 중국 정부도 상당기간 덩샤오핑이 내걸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 지침에 충실했다.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키울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다'며 미국과의 정면 충돌은 가급적 피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첫 대면 정상회담을 가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지만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미국을 위협할 군사대국으로 급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더구나 지난 10월 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집권을 기틀을 마련한 시진핑 주석은 일찌감치 자신이 내건 '중국몽'을 통해 미국에 사실상 도전장을 던져 놓은 상태다.
미국의 상당수 학자와 중국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중국을 견제하지 않으면 글로벌 리더십을 중국에 뺏기게 된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 정치권에서도 한 목소리로 "더 늦기 전에 중국을 제압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같은 위기감은 지난 10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공개한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백악관은 중국에 대해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점 더 경제·외교·군사·기술적 힘을 갖춘 유일한 경쟁자"라고 지목했다.
21세기에 미국을 위협하고 있고, 맞서 싸워 이겨야할 유일한 경쟁국이 중국이란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트럼프 전 정부의 대중 관세 및 무역 보복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중국 견제를 최우선 외교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더욱 거세질 미중 경제 패권 전쟁...틱톡·반도체에서 무역·금융까지
바이든 정부와 의회는 올해 중국 기술 기업에 대한 규제와 동시에 미국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법안을 쏟아냈다. 미국의 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는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과 산업 성장을 저지하고, 중국이 이미 주도권을 쥔 글로벌 공급망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 초당적 지지로 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반도체과학법'에 서명했다.
이어 지난 10월 미국 정부는 첨단 반도체 장비 중국 통제를 발표했고 상무부는 12월에 양쯔메모리테크놀러지(YMTC) 등 30여개의 주요 메모리칩 제조 관련 업체들을 무더기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중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 관련 미국 WTO 제소 사실 알린 환구시보 트윗, 자료=트위터] koinwon@newspim.com |
미국 상원과 하원은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국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을 퇴출시키기 위한 초당적 입법안을 앞다퉈 처리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지난해 중국을 견제하고 기술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법안들은 2023년에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중국과의 진검승부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셈이고 그 실질적인 파장도 확산될 전망이다.
이뿐 아니다. 백악관의 외교안보 사령탑인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생명공학과 청정에너지 분야 등 미래의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이 주도하도록 방치해선 안된다면서 관련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향후 생명공학, 퀀텀, 인공지능(AI), 로봇 산업까지 미중 기술 패권 전선이 확산될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윌렘스는 2023년에도 바이든 정부와 의회가 중국의 '기술 굴기'를 꺽고 미국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규제와 법안을 쏟아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 자본의 중국 기업 투자를 규제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더구나 공화당이 1월부터 미 하원의 다수당으로 복귀하는 것도 미국 정치권의 '중국 때리기'에 기름을 부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차기 하원의장이 유력한 케빈 매카시 의원등 공화당 지도부들은 한층 강경한 대중 견제 필요성을 역설해왔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인 헝 트란은 아틀랜틱 카운슬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미 의회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해 부여해온 '영국적 정상관계' 지위 박탈을 추진하며 전방위 압박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대만과 봉쇄'를 둘러싼 미중 갈등 고조
워싱턴 정가에선 올해 미 하원의 공화당 장악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놓고 가파르게 대치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매카시 의원은 자신이 하원의장이 될 경우 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방문하겠다고 수차례 언급해왔다.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아시아 순방 도중 대만 방문을 감행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대만에 대한 전방위 포위 군사 작전과 전투기 위협 비행을 감행했고, 미중 정부간 대화 채널도 단절시키는 초강수로 맞섰다.
시 주석도 지난 10월 당대회를 통해 집권 3기에 나서면 연설을 통해 대만 통일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면서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대만을 중국 견제의 지렛대이자 보루로 굳건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맞대응하고 있다. 2023년 국방수권법(NDAA)에는 향후 5년간 대만에 100억 달러를 융자로 지원하며 미국산 무기를 구매토록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중국 폭격기 이륙모습[사진=위챗 공중계정] |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변함잆다면서도 대만의 안보는 반드시 지켜내겠다며 중국에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
대만 문제도 따지고 보면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군사적 패권 경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집권 이후 줄곧 전방위 중국 견제와 봉쇄에 주력해왔다. 이제 동맹국과 우군을 최대한 확보해가며 중국 포위망을 거의 완성해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를 발족시켰고, 미국·일본·호주·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까지 확대 개편을 추진중이다.
북핵 위협을 계기로 형성된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도 장기적으로는 중국 견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일본이 그동안 금기시됐던 반격 능력 보유를 천명하고 군사력 증강에 나선 것을 가장 먼저 반긴 것도 미국 정부다.
미국 정부는 인도·태평양에서의 중국 견제와 주도권 확보를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결성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 정부에 1982년 미중 공동성명에 따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충실히 지키라고 강력히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미국에 전방위 압박을 완화시키고 주변국들의 이탈을 이끌어내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의 역할을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시 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처럼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국가와 우방국들의 틈을 과감히 비집고 들어가는 외교 행보도 이어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의 관계 재설정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치열하게 경쟁하되 관리를 해가자'...미중의 새로운 가이드 라인 주목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11월 발리에서 처음으로 대면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에서 가장 강조되고 나름 공감대를 형성한 내용은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경쟁하되, 위기는 공동으로 관리해가자'로 요약된다.
양국이 이미 양보할 수 없는 패권 경쟁에 나선 상황이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기후 변화 등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협력을 유지하자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시 정상 회담 인사말에서도 "나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차이를 잘 관리하고, 경쟁이 분쟁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며, 우리의 상호 협력이 필요한 긴급한 글로벌 이슈에 대해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의 공감대를 구체화하기 위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올해 초 방중을 추진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미중 정상간 솔직하고 생상적인 논의를 토대로 양국 관계를 책임있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면서 "나는 내년 초 중국 방문에서 이런 대화가 진전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패권을 두고 정면 승부에 나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되 관리하자'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며 갈등과 위기를 관리해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kckim10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