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82일,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만난 사람도, 약속한 일도 너무 많았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채 끌고 온 일이 많았다. 비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 같아, 그 자책감도 더욱 크게 느껴졌다."
헌정사상 첫 20대 여성 당대표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 에세이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으로 돌아왔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비현실적인 사건을 겪는 것처럼 민주당에서의 82일을 '이상한 나라의 박지현'으로 빗대어 표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신인으로서 당대표급인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배경과 82일 동안 벌어졌던 갈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면서 민주당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우리 정치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고백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청년정치와 성평등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날 △청년들이 정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유와 찾아야 하는 이유 △정당에 청년 페미니스트가 필요한 이유 △여성과 청년의 정치세력화와 정치제도 개혁 △정치적 대표의 다양성과 성평등 민주주의 등을 주 내용으로 대담 형식의 강연을 진행했다. 2022.09.15 yooksa@newspim.com |
◆ "위원장직, 이재명이 제안…고위전략회의가 제일 싫었다"
"3월 12일, 이재명 후보는 내게 전화를 걸어 공동비대위원장직을 제안했다. 비대위원도 아니고 비대위원장? 예상 밖의 제안이었다.…윤호중, 이재명, 송영길 세 분이 번갈아가며 전화를 걸어 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와는 이날만 무려 다섯 번을 통화했다."
박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을 수락받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전국민 모두가 공분을 산 성 착취물 n번방 사건을 취재한 '추적단 불꽃' 활동 이력으로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디지털 성범죄 근절 특별위원장으로 위촉됐다. 대선 패배 이후 비대위원장직을 제의받자 주변에서는 "비대위원장은 안 된다", "얼굴마담하는 것"이라고 만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하지만 결국 그는 수락했으면 좋겠다는 청년들의 의견에 더 무게를 싣었고 민주당은 물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20대 여성 당대표가 됐다.
"매주 월요일 4시마다 열리는 고위전략회의만 마치고 나오면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고위전략회의가 그렇게 싫었던 이유는 그 안에서 10대 1로 이른바 '다구리'를 당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남성 중진위원들이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나는 비대위원장이 아니었다."
녹록지는 않았다. 남성 중진의원들 중심의 지도부에서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전 위원장은 "참다참다 '저 공동위원장 아닙니까. 왜 제 말은 듣지도 않으시고 저한테는 보고도 안 하십니까. 저 좀 패싱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 "최강욱·박완주 사건으로 '내부총질' 공격"…6·1 지방선거 후일담
박 전 위원장과 지도부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건 최강욱 의원의 이른바 '짤짤이 사건'과 박완주 의원의 성추행 의혹 사건 때문이었다. 박 전 위원장은 두 사건 모두 즉각적이고 엄중 처분을 주장했다. 특히 최 의원 사건은 조사를 공개적으로 명령했다. 이 사건은 강성팬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재명 대표(당시 지선 총괄선대위원장)도 내 입을 막기에 바빴다"고 주장했다.
"식사를 하던 중 누가 방문을 똑똑 하고 두드렸다. 이재명 위원장이었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20분가량 이런 얘기를 했다.
'전쟁 중에는 같은 편 장수를 공격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전후 맥락상 최강욱이 딸딸이라고 말했을 거라 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전쟁 중이니 그만 멈췄으면 좋겠다.'"
박 전 위원장은 책에 이 사건으로 이 대표에게 많은 실망을 했다고 적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8.28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후보자 등록을 하기 위해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 접수처로 향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제출한 등록 서류는 당 규정에 따라 접수 자체가 반려됐다. 2022.07.18 kilroy023@newspim.com |
성추행 의혹으로 지난해 5월 12일 제명된 박완주 의원 사건은 보다 적나라하게 서술돼있다. 박 전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제명을 결정하기 20여일 전 윤리감찰단 부단장이 보고서를 가지고 찾아왔다고 한다. 내용은 명백한 성범죄였다고.
"사건을 보고받은 후 국회 본청 207호에서 박완주 의원을 처음 대면했다. 피해자의 뜻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조용히 내려놓을 것을 권유했다. 그는 처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했다가, 횡설수설했다. 그러면서도 2년 후에나 있을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그 주 일요일까지 답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답이 오기 전 의원실에서 비서를 채용한다는 글을 올렸다는 보고를 받았고, 당시 공동비대위원장이었던 윤호중 의원과 함께 전화를 했다고. 그는 박 의원에게 "저기, 아저씨, 지금 뭐하세요?"라고 말했고, 이에 격분한 박 의원이 "너 당비 얼마 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일련의 사건으로 박 전 위원장은 '내부총질'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고, 결국 지선 패배 이후 불명예 사퇴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 끝은 좋지 않았지만…박지현의 정치는 '현재진행형'
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 7월 민주당 대표 출마에 나섰다 지원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서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박 전 위원장의 82일에 대한 평가는 그가 직을 내려놓은 지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엇갈린다. 혹자는 정치신인의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말하는 반면, 혹자는 너무 과도하게 비판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 민주당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민주당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박 전 위원장은 많은 분량에 걸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가감없이 펼치면서도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을 고쳐서 이 꿈을 민주당 안에서 이루겠다는 다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민주당이 국민과 좀 멀어져 있을지라도, 우리 민주당이 다시 국민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
여기에 노란봉투법 제정, 디지털 성범죄 근절,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기후변화 대응 등 사회적 의제에 관한 자신들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비대위원장 박지현은 과거형이지만, 정치인 박지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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