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아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한 경우 공소제기에 위법성이 있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환송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18년 11월 4일경부터 같은 달 15일경까지 본인 명의의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성명불상자에게 양도해 보이스피싱 조직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고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200시간의 사회봉사도 함께 명령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적어둔 종이를 분실한 것일 뿐 양도한 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 공소사실은 일시와 장소, 양도 상대방과 양도 방법이 특정되지 않아 형사소송법상 공소제기 절차가 무효이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공소장에 범죄의 일시, 장소,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더라도 공소사실을 특정하도록 한 법의 취지에 반하지 않고 공소범죄의 성격에 비춰 개괄적 표시가 부득이한 경우에는 공소내용이 특정되지 않아 공소제기가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의한 범행의 경우 각각의 역할을 하는 공범 사이에도 서로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형태로 범행이 은밀하게 이루어져 범행 일시, 장소, 양도 상대방 등을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라며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약 열흘 이내로 특정돼 있고 양도 대상물인 접근매체가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로 명시돼 있어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가져올 염려가 없다"면서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은 "전자금융거래법은 접근매체의 교부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매체의 양도, 대여, 전달 등을 구분해 구성요건을 세분화하고 있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에 기재된 피고인의 행위는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성명불상자에게 건네주었다'는 것으로 대여, 전달 등과 구별되는 양도를 구성하는 고유한 사실이 적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은 "피고인이 자신의 의사로 체크카드를 건네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바 이와 같은 공소사실 기재는 피고인에게 방어의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방어권을 행사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원심판결에는 공소사실의 특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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