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사망한 채무자가 남긴 채무에 대해 자녀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면 손자녀가 상속인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망자의 배우자만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3일 승계집행문 부여 이의 특별항고심을 열어 사망한 A씨의 손자녀 4명의 패소 결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하고,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있으면 배우자가 그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고 판시한 대법 2015. 5. 14. 선고(2013다48852 판결)을 변경했다.
피신청인 B씨는 2011년 A씨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해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A씨는 2015년 사망했는데, 당시 A씨는 아내와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고 신청인들은 망인의 손자녀들로서 미성년이었다.
A씨 사망에 따라 그의 아내는 상속한정승인을 했고 자녀들도 모두 상속을 포기했다. B씨는 확정판결을 받은 A씨의 채무가 그의 손자녀인 신청인들과 망인의 아내에게 공동상속됐다는 이유로 2020년 확정판결에 대한 승계집행문 부여신청을 해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았다.
이에 A씨 손자녀 4명은 자신들은 망인의 상속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 사건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게 됐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원심은 신청인들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신청인들은 대법원에 특별항고에 나섰다. 특별항고 쟁점은 기존 판례를 원심처럼 유지할 것인지, 변경할 것인지였다.
대법은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대대수의 대법관들은 "종래 판례와 달리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손자녀나 직계존속이 있더라도 배우자만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종래 판례에 따른 원심결정은 파기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이번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은 원심 판결에 대해 신청인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재판을 통해 재산권을 보장받아야 할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해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위반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존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2명의 대법관은 "종래 판례가 선고된 후 그 판결에 따라 공동상속이 이루어진다는 전제에서 오랫동안 법률관계가 형성되어 왔다"며 "종래 판례를 변경하는 것은 이와 같이 형성된 법률관계의 안정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법 관계자는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보아 종래 판례를 변경하였으며, 이 결정으로써 상속에서 배우자의 지위 및 이에 관한 민법 제1043조의 해석론을 명확히 정립하고, 상속채무를 승계하는 상속인들이 상속에 따른 법률관계를 상속인들 의사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간명하고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