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과 유럽 전반에 은행 위기를 촉발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중소 지역은행인 퍼스트시티즌스은행(FCNCA)에 인수되면서 은행 위기가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SVB가 새 주인을 찾기까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던 만큼 지난 2008년과 같은 시스템 위기가 발생할 확률은 이제 현저히 낮아졌다는 안도감이 확산됐다.
다만 이번 일로 은행권 위기가 완전히 봉합됐다고 단정짓긴 어려우며, 무엇보다 앞으로 신용 경색 상황이 심화될 것으로 보여 침체 리스크는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실리콘밸리은행(SVB) [사진=블룸버그] |
◆ 77% 할인딜로 얻은 '안도랠리'
SVB 파산 이후 관리를 맡아 온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27일(현지시각) 성명서를 내고 퍼스트시티즌스가 165억달러(약 21조4000억원)에 SVB의 모든 예금과 대출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약 720억달러로 추정되는 SVB 총자산에서 77%정도 할인된 가격이다.
이번 인수에는 SVB의 모든 예금과 대출이 포함됐고, SVB의 자산 중 약 9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주식 및 일부 자산은 법정관리 상태로 남아 FDIC가 관리할 예정이다.
FDIC는 퍼스트시티즌스가 인수하는 상업 대출에 대해 8년간 손실 공유계약을 했으며, 우발적 유동성 목적을 위한 특별 신용한도에도 동의했다.
플로리아대 교수 마크 제프리 플래러니는 대대적인 할인율이 적용된 이번 인수가 비슷한 투자를 모색하는 은행들에게 벤치마크가 될 수도 있다면서 "(당국에) 좋은 여건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시스템 위기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은 면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새 유동성 지원 기구인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ank Term Funding Program·BTFP)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블룸버그통신 보도까지 나오면서 시장 안도감은 빠르게 확산됐다.
투자자들은 은행을 바라보는 불안 심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당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안도했다.
SVB의 우량 자산을 헐값에 사들였다는 평가를 얻는 퍼스트시티즌은행 주가는 이날 개장 전부터 20% 급등했고 정규장서도 55%가 뛰었다.
유동성 위기설이 도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경우 주가가 12% 가까이 뛰었고, 췌근 급락했던 팩웨스트 뱅코프의 경우도 3% 넘게 올랐다. 이밖에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4대 은행 주가는 2~4%대 상승을 기록했다.
[사진=블룸버그] 2023.03.28 kwonjiun@newspim.com |
◆ 침체로 옮겨간 시선
이번 SVB 사태가 인수 합의로 일단락되면서 은행권 위기 확산 불안은 진정됐으나, 투자자들의 시선은 침체 위기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은행 시스템의 전반적인 유동성 위기가 신용 경색으로 이어져 실질 GDP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것.
LPL파이낸셜의 제프리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 는 "연준의 공식 긴축 조치 외에도 추가적인 신용 경색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면서 "은행 위기는 필수적으로 이러한 여건을 타이트하게 만들고, 이번 위기의 경우 연준이 50bp 금리를 인상한 것과 맞먹는 효과를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날에는 연준 내 대표 매파로 꼽히는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준 총재가 "은행 스트레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신용 경색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면서도 "신용 경색은 경제를 둔화시킬 것이기에 매우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미 중소형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부실 등으로 불황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안 셰퍼드슨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수석 경제학자도 이날 CNBC에 출연해 중소기업들의 신용 경색 문제가 심각해졌고, 이전에는 미국 경제가 침체를 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경고했다.
또 필립 제퍼슨 연준 이사는 중소형 은행에서 대형 은행으로 예금 이전이 빨라지면서 지방 금융권에 대한 신용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기업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퍼슨 이사는 신용 경색이 연준의 인플레이션 파이팅에 보탬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업과 가계 주머니에 든 돈은 점차 줄어들어 급격한 경기 위축과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