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뉴스핌] 유명식 특파원 = 지난 1월 베트남 박닌(Bac Nihn)성 P산업단지 1200㎡ 규모의 건물에 생산설비를 들인 한국인 A씨는 자체 소방시설에 대한 당국의 승인이 나지 않아 3개월이 넘도록 기계를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매달 6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와 현지 직원 10여명의 인건비 등이 꼬박꼬박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승인이 날지 기약도 없다. 베트남 당국이 이미 시공한 내화페인트에 대해 갑자기 문제를 삼으면서다.
A씨는 "이미 소방승인을 받은 공장들이 사용했던 내화페인트로 마감을 했는데, 뜬금없이 자신들이 인증하지 않은 제품이어서 '소방시설완공검사필증'을 내줄 수 없다고 한다"면서 "시공한 제품의 샘플이라도 인증을 받아 떼를 써보고 싶지만, 베트남의 성능인증기관 자체가 달랑 1곳이라 언제 가능할지 기약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지난해 5월부터 박닌성에 1000㎡ 규모의 공장을 운영 중인 한국인 B씨는 박닌성뿐 아니라 하노이 소방당국으로부터도 소방시설 승인을 받아야 했다. 뜬금없이 하노이 소방국 관계자가 방문해 천장에 1㎡도 채 안 되는 연기흡입구(덕트) 3개를 뚫도록 한 것이다. 특히 '자신들이 지정한 업체에 의뢰해 시공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B씨는 "영문도 모르고 4000만원을 들여 흡입구를 달아야 했다"고 푸념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대폭 강화된 현지 소방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2일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코참)와 재베트남 한국건설협회(건설협회) 등의 말을 종합하면 베트남 소방당국은 지난 2021년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주택 및 건축물에 규모에 따른 소방 차등 적용 등 화재 안전에 대한 규정' 등을 수차례 다듬었다. 공장 내부의 철 구조물까지 인증된 내화도료로 마감하도록 하는 등 기존에 없던 내용을 무더기 신설한 것이다. 특히 내화도료는 국제인증을 받은 제품조차 인정하지 않고, 자국이 지정한 성능인증기관 1곳에서 인정한 2개 제품만 쓰도록 제한했다.
지난해 9월 빈즈엉(Binh Duong)성 등 일부 지역에서 노래방 화재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사정작업으로 인한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까지 더해져 체감하는 규제의 강도는 더욱 거세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축 승인 때 없던 소방시설 기준을 들이밀며 다시 시공하도록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하소연했다.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해 놓고 소방시설에 대한 승인이 나지 않아 가동을 못하는 한국기업이 10여 곳에 이른다는 코참과 건설협회의 조사결과도 있다.
코참 등이 지난해 말부터 베트남 건설부와 공안부 소방국 등을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규제가 완화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앞서 일본기업협회는 '3조1000억 베트남동(VND) 규모의 18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며 지난해 말 베트남 공안부장관에게 청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한창우 코참 부회장은 "베트남 정부가 예고 없이 기준을 강화하면서 충분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다 보니 상당수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소방시설을 트집잡아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으니 시공사는 공사비를 못 받고, 제조업체는 생산을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뉴스핌] 유명식 특파원 = 베트남의 깐깐한 소방기준을 맞추기 위해 현지 한 외투기업의 사무실 내에 소방호스가 설치돼 있다. 2023.04.12 simin1986@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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