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이른바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관련으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고위급 인사들의 첫 재판에서 수사기록 열람·등사 문제로 신경전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허경무 김정곤 김미경 부장판사)는 14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 출석의무가 없는 만큼 이날 법정에는 변호인들만 출석했다.
12일 통일부는 탈북 어민 강제북송 관련 판문점 송환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사진은 2019년 11월 7일 경기 파주 판문점에서 통일부 직원이 촬영했다. [사진=통일부] 2022.07.12 photo@newspim.com |
변호인들은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했지만 상당 부분이 군사기밀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있어 열람·등사가 제한적이고 그로 인해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검찰에서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열람·등사를 못해주겠다고 한다. 정보를 유출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서약서에는 납득할 수 없는 조항들이 있고 서약서 제출로 열람·등사를 제한하는 것은 형사소송법 위반인 동시에 이 자체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또 이는 법률가의 양심을 침해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해당 서약서에는 '기밀을 절대 누설하면 안되고, 누설하는 경우 반국가적 행위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검찰은 "서약서 제출은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 제24조에 따른 것으로 공무원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서약서에 적혀 있는 문구도 검찰에서 임의로 작성한 것이 아니다"며 "등사의 경우 제3자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등사를 신청하는 사람에 한해 기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안업무규정 제24조에 따르면 비밀취급 인가를 받지 않은 사람이 비밀을 열람하거나 취급할 때는 국가정보원장이 정한 바에 따라 소속기관의 장이 미리 열람자의 인적사항과 열람하려는 비밀의 내용 등을 확인하고 열람 시 비밀 보호에 필요한 자체 보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우선 검찰 측에 한번 더 열람·등사를 신청해보고 재차 거부하면 그때 법원에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명령을 신청하라고 했다. 다음 공판은 5월 26일로 준비기일을 한 차례 속행하기로 했다.
앞서 이들은 탈북어민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게 해 관계 공무원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탈북어민들이 대한민국 법령과 적법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에 체류해 재판받을 권리 등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은 강제북송 방침에 따라 중앙합동정보조사를 중단·조기 종결하도록 해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조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또한 검찰은 서 전 원장이 합동조사팀의 조사결과 보고서상 탈북어민들의 귀순요청 사실을 삭제하고 조사가 계속 중임에도 조사가 종결된 것처럼 기재하는 등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이를 통일부에 배포하도록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지난 2019년 11월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했다는 의혹을 받는 북한 선원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정부가 이들을 북한으로 추방한 사건이다.
검찰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에 해당하는 탈북 어민들이 수차례 귀순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사법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정부가 강제로 돌려보낸 것은 위법하다는 입장이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