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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칼더',진지한 '이우환'..놓칠수 없는 동서양 거장의 작업

기사등록 : 2023-04-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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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칼더, 이우환 개인전 동시 개최
모빌,스테빌의 작가 칼더의 조각과 과슈 작품
이우환의 신작 조각과 드로잉 5월28일까지 전시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알렉산더 칼더, 진지하고 명상적인 이우환. 두 작가를 동시에 만나는 전시가 서울 삼청로에서 지난 4월 4일 개막됐다.

국제갤러리(회장 이현숙)는 2관 1층과 3관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조각가로 꼽히는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개인전 'CALDER'를 연다. 또 1관의 2개 공간과 2관 2층,그리고 정원에서는 지난 2009년 국제갤러리 전시 이후 14년 만의 이우환 개인전 'Lee Ufan'을 개최한다. 두 전시는 5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알렉산더 칼더(1898-1976) '무제' 1970. 종이에 과슈, 잉크. 109.86 x 74.93cm,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15 art29@newspim.com

▶매혹의 조각과 과슈 회화, 칼더의 세계로

조각을 좌대에서 해방시킨 혁신적인 예술가인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국내 전시는 지난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국제갤러리는 이번에 칼더의 대표적인 '모빌(mobile)'과 과슈 작업을 선별해 내걸었다. 국제갤러리에서의 칼더 전시는 벌써 네번째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호응하는 작가이자, 작업의 양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칼더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인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작품을 조명한다.

칼더의 조각은 공간과 '소통'하는 것이 특징이다.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고 추상적 선과 형태를 만든 뒤, 공간을 살아있게 만드는 게 칼더의 모빌 조각이다. 묵직한 중량감 없이, 새의 깃털처럼 가볍지만 관념적으로는 묵직한 힘으로 근대적 이상으로서의 자유와 지성을 유쾌하게 은유한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알렉산더 칼더 'Guava' 1955, Sheet metal, rod, wire, and paint, 180.98 x 372.11 x 118.11cm,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사진: Tom Powel Imaging ©Calder Foundation, New York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3.04.15 art29@newspim.com

칼더가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자 프랑스의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1887~1968)은 '모빌'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온 이 프랑스 혁명가는 칼더 보다 10년 연상으로, 프랑스로 건너온 칼더와 함께 활동했다. 뒤샹은 '움직임'을 뜻하는 불어를 살짝 비틀어 모빌이라고 이름지었다. 칼더와 뒤샹은 1930년대 파리에서 만나 동시대를 함께 풍미하면서 당대 유럽의 모더니즘과 미국의 신생 아방가르드 흐름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두 작가는 세계 미술사의 지형도를 확 바꿔 놓았고, 지고촌 곳곳에서 다양한 매체를 탐구하는 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세계 1,2차대전 사이 파리에서 광범위한 조형언어와 작업의 골조를 발전시켰던 칼더는 전쟁 이후에는 국제적인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특히 특유의 재기발랄한 유희성과 조각적 엄밀함이 공존하는 그의 '모빌'은 칼더 작업의 뚜렷한 특징으로 널리 각인됐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알렉산더 칼더 'The Signed Balloon'.1969. 종이에 과슈, 잉크. 109.86 x 74.61cm.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3.04.15 art29@newspim.com

이번 전시는 칼더 작업에서 '제스처(gesture)'라는 요소가 조형예술에 어떻게 근간을 이루는지, 곡선 및 끊어진 선 같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물리적 구현이 어떤 방식으로 작가의 비전인 '생동감'을 뒷받침하는지 음미하게 한다.

이같은 측면은 놀라울 정도로 밸런스(균형)를 유지하며, 공기 진동에 따라 유유히 회전할 때 조형적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조각은 물론, 잉크 및 과슈로 작업한 회화에도 투영돼 있다. 공과대학 기계과 출신의 '공대오빠'였던 칼더는 공학적 역학과 물성의 특징을 어떤 작가보다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여기에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재료들에 마치 봄바람에 맞춰 춤추는 듯한 유연한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유쾌한 감탄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운드(sound)'와 '동세'로 회귀되는 칼더의 작업적 특징은 지난 2007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Hypermobility'라는 타이틀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서도 조명됐다. 칼더는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조각의 세계로 끌어들임으로써 작품이 차지하는 공간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공기 자체까지도 활성화시켰다. 게다가 그림자 또한 공간과 공명하며 조각이 품을 수 있는 영역을 보란듯 확장했다. 당시 휘트니미술관의 전시담당 큐레이터는 그의 전 작품에 걸쳐 드러나는 예술적 가능성에 대해 "특유의 움직임과 그것이 자극하는 감각적 반응에서 드러나는 내재적 수행성"이라고 규정했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알렉산더 칼더 'Grand Piano, Red' 1946. Sheet metal, wire, and paint 24.45x25.4x7.62cm,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3.04.15 art29@newspim.com

국제갤러리 3관은 이번 전시의 핵심에 해당되는 공간이다. 갤러리측은 모빌의 독특한 생동력과 그로써 추동하는 공간적 역동성이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사선의 높은 가벽을 만드는 등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

'Untitled'(c.1940), 'Grand Piano, Red'(1946) 등 금속판과 와이어 등으로 섬세하게 구성된 스탠딩 모빌(standing mobile) 작품은 칼더 조각의 수행성이 절묘하게 작동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작지만 더없이 사랑스런 이들 조각을 감상하다 보면 역시 '천재의 솜씨'임을 느끼게 된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알렉산더 칼더 'Untitled(무제)' 1971, 종이에 과슈, 잉크. 109.54 x 74.93cm, Image courtesy of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 Resource, New York © 2023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SACK, Seoul © Calder Foundation, New York,국제갤러리.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15 art29@newspim.com

칼더의 조각에 반영된 와이어와 금속의 표현력은 2관에 전시된 과슈 작업들과 서로 조응한다. 그의 자유분방한 과슈 작품은 모빌 작업의 개념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악보를 연상시키는 검정색 선들이 화폭을 가득 채운 'Untitled'(1963)는 조각작업을 할 때 떠오른 발상을 속도감있게 표현한 것이다. 사운드에 대한 작가의 지대한 관심은 바람을 연상시키는 나선형과 물결치는 듯한 소용돌이 형태의 묘사와도 스르륵 연결된다.

그때 그때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은 이번 전시에 나온 칼더의 모빌 중 대표작에 해당되는 'Guava'(1955)와도 긴밀하게 협업한다. 공기의 순환에 모빌 작품이 살짝씩 반응하고, 이 반응이 움직임으로 증폭하면서 작품은 사랑스런 음악을 품은 것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이끌림과 반발, 힘과 우아함 사이의 팽팽한 줄타기는 1944년에 제작한 석점의 브론즈 작품 'The Flower', 'Fawn', 'Whip Snake'에도 섬세히 구현돼 었다.

2관에 설치된 일련의 과슈 작품들에서도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과슈 페인팅들은 공간 구성에 대한 칼더의 실험적 발상이 반영된 조각작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나아가 무의식에 대한 고찰의 발현이기도 하다. 철판, 철사 같은 산업적 재료를 자르고 구부려 손으로 직접 형태를 만들어가는 칼더의 조각 작업방식은 무형의 동력과 형태를 탐구하며 인지하는 과정을 거쳐, 종국에는 관객과 감정적으로 부드럽게 교감한다. 바로 이 점이 탁월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국제갤러리의 알렉산더 칼더 개인전 전시 전경. 조각 작품 'Crag'(1974)과 다양한 과슈 회화들이 보인다.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3.04.17 art29@newspim.com

칼더의 작품에서는 해와 달, 산과 물, 식물 같은 자연적 요소와 기하학적 상형문자들이 자유롭고도 긴장감있게 구현된다. 차갑고 건조하기 그지 없는 산업적 재료들로 더없이 아름다운 조각을 탄생시킨 작가는 회화에 있어서는 보다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드러낸다. 국제갤러리 2관과 3관에 나뉘어 전시된 칼더의 다양한 작품들은 상호작용하듯, 선창과 후창이 이어지는 악구의 반복처럼 음악적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거장의 회화와 조각은 맥을 같이하며 한편의 시처럼, 공상적이면서도 풍부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칼더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조각가의 손자이자 아들로 태어나 스티븐스공과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예술에의 열망을 떨치지 못해 1923년 뉴욕 아트 스튜던츠리그에 재입학해 4년간 회화를 전공했다. 데뷔 후 철사를 구부리고 일그러뜨리는 방식으로 대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조각법을 선보인 그는 이후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는 '칼더의 서커스'를 제작, 시연해 당대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사이에 유명세를 탔고, 이후 유명한 키네틱 조각 '모빌'을 창안했다.

초기 손이나 작은 전기모터로 구동되었던 모빌은 1934년부터는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조각으로 이어졌다. 칼더는 모빌과는 상반되는 부동적 조각 '스테빌'도 제작했고, 1950년대부터는 거대한 규모의 야외 설치작업을 펼쳤다. 이 조각들은 오늘날 세계 각지의 공공기관에 설치돼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43년 뉴욕 현대미술관을 필두로 1964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1976년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칼더는 1952년 베니스비엔날레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의 '.125'(1957), 파리 유네스코본부의 'Spirale'(1958), 이탈리아 페루자도의 고대 도시 스폴레토에 설치된 'Teodelapio'(1962) 등이 대표작이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이우환(b.1936), Drawing for 'Relatum–Dialogue'. 2021/2023. Wood floor, white paint, natural stone, light bulb, charcoal drawing, Natural stone,120x120cm (2 piec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2023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3.04.17 art29@newspim.com

▶단순하지만 메타포로 가득한 이우환의 작업

이우환은 당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 누구보다 국제성을 띈 이 작가의 작업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많은 메타포를 품고 있다. 국제갤러리가 14년 만에 이우환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2009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이자,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설립(2015)을 제외하면 국내 관람객들이 오랫만에 접하는 개인전이다. 해외에서는 베르사유궁전, 퐁피두 메츠, 뉴욕 디아비컨 같은 중요한 곳에서 그의 개인전이 종종 열리지만 정작 국내에서 본격적인 개인전은 드물었기에 반가운 자리다. 1관의 2개 공간과 2관 2층, 그리고 정원에 펼쳐진 것은 1980년대 작품을 비롯해 근작및 신작까지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이다.

전시의 핵심은 조각들이다. 이우환은 1956년 일본으로 이주해 전위적인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주도하기 시작했던 1968년 처음 '관계항(Relatum)'이란 작업을 선보인 이래 오늘날까지 꾸준히 동명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작들은 그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이우환은 무(無)에서 시작해 자기 자신의 표상으로서의 표현을 만들고 그것을 대상화하는 대신, 현실과 맞물리는 '현상의 파편으로서의 작업'을 보여준다. 즉 타자 또는 세계와의 교류에 '열려 있는 표현'으로서의 작업인 셈이다. 그는 작품이 현실 내지는 일상과 끊임없이 관계맺도록 하기 위해 갤러리의 화이트큐브 공간과 같은 익명의 뉴트럴한 장소에,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의 메타포를 만든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이우환 'Relatum–Dialogue'.2021/2023, Wood floor, white paint, natural stone, light bulb, charcoal drawing, Natural stone,120x120cm (2 piec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사진= 이영란 기자] 2023.04.15 art29@newspim.com


이우환은 자신의 모든 조각들을 '관계항(relatum)'이라 제목 짓고 여기에 종종 부제를 붙인다. 부제는 그저 연상을 도울 뿐 직설적이진 않다. 규정지을 수 있는 '관계' 대신,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를 의미하는 '관계항'을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작품의 개별 요소들이 끊임없이 맥락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관계에 놓이도록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자연을 상징하는 돌,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을 하나의 '관계항'으로서 작품 공간에 직접 개입하게 되는 관람객은 두 사물(돌과 철판)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침묵 중에 진행되는 대화를 명상하듯 관찰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아와 타자의 공생(co-presence)을 음미하게 된다.

이우환은 말한다. "돌은 시간의 덩어리다. 지구보다 오래된 것이다. 돌에서 추출된 것이 철판이다. 그러니까 돌과 철판은 서로 형제 관계인 것이다. 돌과 철판의 만남, 문명과 자연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 내 작품의 발상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공백이 있고, 공명이 있고, 상호 충돌하여 발생하는 기가 있다. 그리고 마침내 내부와 외부가 교통하는 가변성의 세계, '무한'의 세계가 작품에 담겨진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국제갤러리 1관에 설치된 이우환의 신작 'RELATUM - The Kiss'. 2023, 돌, 금속 체인. ©Ufan Lee, ADAGP. Paris - SACK,Seoul,국제갤러리. [사진=이영란 기자] 2023.04.15 art29@newspim.com

이번 출품작 중에는 의인화된 은유의 예시를 보여주는 신작 'Relatum– The Kiss'가 가장 관심을 모은다. 작품의 부제인 '키스'에서 알 수 있듯 사람임을 암시하는 두개의 돌이 조우하며 접점이 만들어졌다. 각각의 돌을 둘러싼 두개의 쇠사슬 또한 교차하면서 교집합을 보여준다. 두 돌의 접촉점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쇠사슬의 방향성은 이우환의 회화 연작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강한 역동성을 불러 일으킨다.

과거에도 작가는 의인화된 은유를 적극 도입한 바 있다. 그러니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6년에 제작한 'Relatum–Lover'는 두개의 돌이 그들을 받치고 있는 철판에 의한 경계를 극복하려는 듯 서로를 향하고 염원하는 형국이다. 작가에게 이 같은 일종의 트릭은 작품에 미적 요소를 더하는 장치인 동시에 그 표현 자체가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1관 안쪽 전시장 한켠에 내걸린 'Dialogue'라는 타이틀의 드로잉들은 그의 유명한 회화 연작 'Dialogue'를 연상시킨다. 정신과 호흡을 극도로 통제하고 가다듬어야만 찍어내릴 수 있는 커다란 '점'과 자연물을 묘사하는 듯한 제한된 수의 '선'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작가가 만든 여백과 긴장감 넘치는 구도 앞에서 관람객은 사색에 빠지게 된다. 이우환의 작업은 그것이 드로잉이든, 조각이든, 하나의 선이든 모두 '세계와의 열린 대화'로 초청하는 현상들의 파편임을 암시한다.

2관 2층에 전시된 'Relatum–The Sound Cylinder'(1996/2023)는 강철로 만든 장중한 원통과 그에 기대어 놓인 돌로 이뤄진 작품이다. 속이 텅 빈 원통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숲 속의 새들, 비와 천둥 같은 자연의 소리, 그리고 에밀레종 종소리가 공명하듯 전시장에 조용히 울려퍼진다. 이우환은 인공물과 자연석의 개별적인 물성 그대로를 공간에 병치함으로써 그들 간의 관계가 발생시키는 파장을 성찰하게 한다. 그 파장이 만든 '울림'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며, 공기와 같은 매질의 진동을 통해 전파되는 소리, 즉 음파의 성질과 맥을 같이 한다. 

[서울 뉴스핌]이영란 기자= 국제갤러리 2관 2층에 출품된 이우환의 'Relatum–Seem' 2009. 흰색의 캔버스와 돌이 무심한 듯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작품이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Ufan Lee / ADAGP, Paris - SACK, Seoul [사진= 이영란 기자] 2023.04.17 art29@newspim.com

2관에는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와 돌이 무심하게 마주보고 있는 'Relatum–Seem'(2009)도 설치됐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흰 캔버스는 언뜻 존 케이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서구의 문제적 작품들이 '비(比) 회화' 등을 상징하는 전복적 작업인 것과는 달리, 이우환이 보여주는 흰 캔버스와 그 앞에 놓인 돌에 깃든 침묵이나 물질적 현존에는 이같은 결연한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어두운 전시장 한 가운데서 이질적이지만 생산적인 대화로 초대하는 '매개'의 역할을 수행한다. 관람객은 실재를 초월하는 대상과의 직접적이면서도 열린 대화를 통해 차분히 묵상할 시간을 갖게 된다. 이렇듯 이우환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무한'을 표현하고 있는 메타포이자 서사인 것이다.

작가의 다음 메시지를 들으며 그 메타포의 세계로 빠져볼 시간이다. "현 시대가 신이나 '인간'이라는 망령, 그리고 정보라는 망령한테 홀려서 맥을 쓸 수 없습니다.(중략)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Encounter)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art2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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