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현민 기자 = 전세사기로 인한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국적으로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이 급등하고 있다.
계약 만기에 따른 보증금 회수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신청건수를 늘리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전세가가 절정에 달했던 2년 전 체결한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는데 전세 수요는 줄고 전세가격도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임대차계약이 종료돼 퇴거한 임차인이라도 임차권 등기를 마쳤다면 특별법 대상에 포함되도록 법안 적용 대상을 확대한 만큼 올해 하반기까지 임차권 등기 설정건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올해 1~4월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건수 전국 1만1540건…전년 대비 4배 증가
5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4월 집합건물에 대해 임차권등기명령이 신청된 부동산은 전국 1만1540건이다. 이는 전년 동기(2899건) 대비 298.1%(약 4배) 증가한 수치다.
지역별로 보면 올해 1~4월 임차권등기 신청 부동산수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체 신청건수의 8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이 3549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3314건), 인천(2652건)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장 많이 늘어난 지역은 경기도다. 경기도의 올해 1~4월 임차권등기 신청 부동산수는 3314건으로 전년 동기(660건) 대비 402.1%(약 5배) 증가했다. 같은기간 인천이 584건에서 2652건으로 354.1%(약 4.5배), 서울이 850건에서 3549건으로 317.5%(약 4.2배), 대구(52건→212건)와 부산(152건→606건)이 각각 307.7%(약 4.1배), 298.7%(약 4배)로 지난해 대비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임차권등기명령 신청건수가 급등한데는 지난해말 불거진 전세사기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전세가격에 따른 여파로 보인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 종료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임차인에게 단독으로 임차권등기를 할 수 있도록 한 법률적 안전장치다. 임차권 등기명령을 받아 등기가 이뤄지면 임차인이 개인 사정으로 먼저 이사를 하더라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확보하게 된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실거주와 확정일자가 필요한데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돌려받은 상태에서 부득이 이사하게 되면 확정일자가 있더라도 실거주가 아니어서 우선변제권이 사라지게 된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사를 가야 하는 경우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빌라·단독주택 주거지. [사진=뉴스핌DB] |
◆ 정부 임차권 등기 마친 임차인 특별법 대상 포함…"하반기까지 신청건수 늘어날 것"
일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경우 임차권등기를 설정하고 이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임차권 등기를 하고 전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박순남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부위원장은 "미추홀구의 경우 임대인이 잠적하면서 건물 관리가 오랜 기간 제대로 안 돼 이를 견디지 못해 전출한 세대도 꽤 있다"며 "이들은 임차권 등기를 설정했어도 대출은 물론 아무런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임대차계약이 종료돼 퇴거한 임차인이라도 임차권 등기를 마쳤다면 특별법 대상에 포함되도록 법안 적용 대상을 확대한 만큼 올해 하반기까지 임차권 등기 설정건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항력·확정일자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더라도 임차권 등기를 마쳤다면 지원 대상에 포함해 이미 다른 집으로 이사한 전세사기 피해자도 구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전셋값이 급등했던 2021년 이후 계약을 체결했던 세입자들의 경우 올해 만기가 도래하지만 전셋값 하락으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룰 가능성이 있다"면서 "낙폭이 둔화되긴 했지만 올해 하반기까지 전셋값이 하락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면서 이사를 앞두고 있는 세입자들의 임차권 등기 신청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min7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