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제사 주재자가 반드시 장남이 아니어도 되며 남녀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1일 공동상속인 A씨의 유해인도 청구 소송 상고심을 열어 A씨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A씨 등 원고들은 망인의 배우자, 장녀, 차녀로, 망인은 원고와 혼인관계에 있던 중 피고 B씨와 사이에 장남을 두게 됐다. 망인이 사망하자 B씨는 망인의 유체를 화장한 후, 그 유해를 또 다른 피고 법인이 운영하는 추모공원 내 봉안당에 봉안했다.
이에 원고들이 망인의 유해인도를 구하는 소송에 나섰다.
하급심에서는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망인의 장남이 제사주재자로서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B씨는 장남의 법정대리인(친권자 모)으로서 그 유해를 점유⋅관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역시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상고심 쟁점은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가 공동상속인들 중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였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 2021.06.16 pangbin@newspim.com |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은 피상속인의 유체⋅유해를 민법 제1008조의3 소정의 제사용 재산에 준해서 보고 제사주재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하면서, 제사주재자는 우선적으로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망인의 장남 또는 장손자가 제사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은 이날 상고심에서 새롭게 판단했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은 현대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망인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으므로,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늘날 조상에 대한 추모나 부모에 대한 부양에서 아들과 딸의 역할에 차이가 없고, 장례 방법도 종래의 매장 대신 화장, 자연장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고, 제사의 형식과 절차도 점차 간소화되고 있는 점도 반영됐다.
아울러 제사주재자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이 보존해야 할 전통이라거나 헌법 제9조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도 들었다.
대법은 "원심은 망인의 장남이 제사주재자로서 망인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보아 자녀들 중 연장자인 장녀를 비롯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제1심 판결을 유지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 관계자는 "대법원은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 중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대한 부분을 변경하면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제사주재자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설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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