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수영 기자 = 최저임금위원회 노사 위원들이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다르게 매기는 안건을 논의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경영계는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을 감안해 인건비 부담을 호소한 반면, 노동계는 차등적용이 최저임금 취지에 어긋난다며 도입을 적극 반대했다.
최임위 노사는 부득이하게 최임위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 대리인 참석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 경영계 "OECD 19개 국가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4차 전원회의를 열고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를 논의했다.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 1만원 돌파가 예상되는 만큼 지불 능력 한계에 봉착한 업종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9620원으로, 380원(3.95%) 인상되면 시급 1만원을 돌파한다.
[세종=뉴스핌] 이수영 기자 = 13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제4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3.06.13 swimming@newspim.com |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최근 현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직원 수를 줄이거나 폐업해야 겠다는 소상공인이나 지불주체들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류 전무는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30개국이 최저임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그 중 19개국은 업종과 지역, 연령을 구분해 여러 형태로 적용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의 도입 필요성을 적극 어필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그간 누적된 고율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고, 최근 높은 생산자물가상승률과 고금리로 인해 임금지불 능력이 취약해져 한계선상 놓인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자영업자 비중은 20.1%로 과거에 비해 점점 낮아지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연평균 소득은 2017년 2170만원에서 2021년 1952만원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며 "소상공인 1개 업체당 연평균 영업이익은 2800만원으로 근로자 1인당 총 급여인 4024만원보다 적을 정도로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현행법에도 '최저임금을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은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업종별 차등적용은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최저임금제 도입 첫해인 1988년을 제외하고는 30년 넘도록 적용된 적이 없다.
◆ 노동계 "차등적용 업종에 편견 우려"
노동계는 해당 업종에 생길 편견 및 기피 현상 문제와 더불어 차등적용 자체가 최저임금 취지에 맞지 않는 제도라며 적극 반대하고 있다.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이미 2017년 최저임금위원회 내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업종별 차등적용과 관련해 저임금 업종의 낙인 효과를 예상하고, 의욕 상실 등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낸 적 있다"고 말했다.
[세종=뉴스핌] 이수영 기자 =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가 열린 가운데 공익위원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3.06.13 swimming@newspim.com |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지난해 2월 경총에서 발표한 한·일·EU 업종별 임금수준 국제비교를 보면, 이미 한국사회는 업종별로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며 "특히 업종별 구분적용을 요구하는 숙박·음식업은 임금수준이 가장 낮은 업종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박 부위원장은 이어 "이런 상황에 위의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조차 차등적용하자는 것은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의 빈곤을 더욱 악화시키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45억원 흑자를 낸 호텔신라의 경우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하는 도소매업, 숙박·음식업을 모두 포함하는 기업이다"라면서 "호텔신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보다 더 적게 받아야 할 합리적 근거가 있냐"며 되물었다.
◆ 근로자위원 2명 불참…노동계 "대리인 참석 허용해야"
이날 최임위 4차 회의에서는 위원 불참시 대책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당초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 구성이다.
다만 이날 회의는 근로자위원 2명이 빠진 채 진행됐다. 불참 인원은 김준영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사무처장과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다.
[세종=뉴스핌] 이수영 기자 =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 입구 2023.06.13 swimming@newspim.com |
김 처장은 흉기를 휘두르며 경찰 진압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며, 류 사무총장은 현재 국제노동기구(ILO) 제111차 세계 총회 참석으로 인해 불참했다.
노동계는 최임위 노사 위원 간 균형 유지를 위해 대리인 참석 및 표결 권한을 이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운영 규칙을 손봐야 하는 사안인만큼 최임위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최임위 운영 규칙 상 대리 표결이 가능한 경우는 질병·부상으로 인한 입원과 개인 경조사 등 두 가지만 인정된다.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구속된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부재와 관련해 최임위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원활한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해법을 제시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현행법상 최임위는 심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6월 29일)에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한 뒤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날부터 약 2주가량 기한이 남은 것으로, 아직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폭에 대한 노사 요구안도 발표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촉박한 일정이다.
최임위는 매 회의때마다 심의기한을 준수하기로 합의하고 있으나, 현 상태로라면 기한을 넘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1988년 이후 최임위가 법정 시한을 지킨 건 9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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