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경제적 목적이 아닌 보이스피싱범에 속아 계좌 접근매체를 전달하게 된 경우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부당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청구인 A씨가 낸 기소유예 처분취소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청구를 인용했다.
[서울=뉴스핌]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 2022.07.14 |
앞서 A씨는 지난 2021년 SNS 광고를 통해 알게 된 성명불상자로부터 '투자금을 입금하여 수익금이 발생하면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듣고 투자금을 입금한 후 그가 지시하는 대로 인증번호 등 접근매체를 전달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르면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등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당시 성명불상자는 해당 인증번호 등 접근매체를 이용해 A씨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고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본인은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라며 "송금한 돈을 출금하기 위해 본인인증에 필요한 서류, 인증번호 등을 보낸 것이고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기소유예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의 전달'에 해당하려면 전달에 대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하고 전달자는 대가관계를 인식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해야 한다"며 "이 사건 청구인에게는 접근매체 전달에 대응하는 어떠한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가 접근매체 전달을 요구받은 시기는 투자로 수익금이 발생했음을 고지받은 이후이므로 접근매체의 전달과 수익금의 발생은 상관관계가 없는 점, 접근매체 전달 전까지 A씨는 계좌개설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은 사실이 없는 점 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청구인은 성명불상자에게 속아 투자금을 편취당했고 그 과정에서 인증번호 등 접근매체를 전달했으나 이는 투자금 등을 돌려받기 위한 의도로 전달한 것이었으므로 접근매체 전달에 대응하는 대가의 존재 및 이에 대한 청구인의 인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그럼에도 청구인의 혐의를 인정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A씨의 심판청구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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