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경기 불황 속에서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초저가나 초고가만 팔리는 소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대형마트에선 한우보다 저렴한 수입산 축산 선물세트가 더 잘 팔린 가운데 백화점에선 1억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주류가 실제로 팔렸다. 중간 없는 소비에 유통채널별로 '초저가' 혹은 '초고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마트 용산점 정육 코너.[사진=노연경 기자] |
◆대형마트 '가성비' 불티날 때 백화점선 1억원 와인 팔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10일부터 9월30일까지 홈플러스 추석 선물세트 사전예약·본판매 기간 동안 LA갈비 캐나다산 세트 매출은 전년 추석 선물세트 판매기간보다 40%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우 냉장세트 매출이 23%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 축산 선물세트가 전년 대비 더 잘 팔린 것이다. 수입산 축산 선물세트의 경우 최소 10~20만원대인 한우세트와 달리 최소 4만원대부터 시작해 저렴하다.
이마트에선 10만원 미만 한우 선물세트가 작년 추석 대비 219%나 더 팔렸다. 같은 기간 10만원 이상 20만원 미만 한우 선물세트 매출이 9.2%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10만원 미만의 저렴한 한우 세트 수요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불황에 잘 팔린 건 가성비 선물세트뿐만이 아니다. 백화점에선 1억원짜리 주류 선물세트가 판매됐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버건디&매장에서 판매한 '아르망루소 샹베르땅 그랑크뤼 버티컬 세트(6병)'다.
'아르망루소 샹베르땅 그랑크뤼 버티컬 세트'는 연간 만 병 밑으로 생산해 희소성 때문에 값이 오르는 한정 세트 상품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이 세트 외에도 7000만원이 넘는 와인과 1억원이 넘는 위스키 등 초고가 한정판 주류 상품을 추석에 맞춰 선보였다.
11번가 '9900원샵' 전문관.[사진=11번가] |
◆대형마트·이커머스는 '초저가 전쟁'
불황과 고물가로 추석 이후에도 유통채널별 판매 전략은 양극단으로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등 가격에 민감한 유통채널은 초저가 출혈경쟁을 펼치고 있고, 백화점은 초고가 상품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VIP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말부터 마트와 슈퍼의 상품 소싱 업무를 통합해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김장철을 앞두고 가격이 치솟은 채소 가격을 낮추기 위해 마트와 슈퍼가 공동으로 상품을 소싱했다.
소싱 물량을 늘려 구매 단가를 낮추는 식이다. 지난 2일 도매시장에서 배추값은 약 20%가량 올랐지만, 롯데마트와 슈퍼는 사전예약 기간 동안 절임배추를 평균 판매가보다 15% 저렴하게 판매한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이마트는 11월 개점기념일을 맞춰 소비진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물가안정 프로젝트'를 통해 연중 상시로 저렴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티무 등 초저가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중국 이커머스 기업과 국경을 초월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도 '초저가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11번가는 지난 4일 온라인판 다이소인 '9900원샵'을 열었다. 1만원 미만의 상품만 모아놓은 전문관으로 이곳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에 무료배송을 적용했다.
프리즈 서울 내에 신세계백화점이 마련한 VIP 전용 공간.[사진=노연경 기자] |
◆VIP 모시기 바쁜 백화점
'매출효자'인 명품 매출 성장세가 꺾여 매출은 제자리걸음, 영업이익은 뒷걸음치고 있는 백화점 업계는 불황에도 지갑을 여는 VIP 고객 공략에 나섰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업계 최초로 VIP만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몰 'RSVP'를 열었다. 이들에게만 노출되는 330여 개 브랜드의 'VIP 전용 특화 상품'을 선보인다. 또 고객군을 세분화해 추천 브랜드와 노출 상품을 다르게 제안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 열린 국내 최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3'에서 업계 최초로 VIP 전용 라운지를 운영했다. 휴게 공간이 따로 없는 프리즈 서울에서 백화점 VIP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최근 예술작품이 명품 가방처럼 백화점 VIP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경기불황일수록 이처럼 한정된 소비만 하는 현상과 관련해 현대경제연구원은 "초저가나 초고가에 해당하지 않는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은 물론 상품 및 서비스 등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추진하는 등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