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외교부는 30일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7년 전 현지 경찰에 의해 납치·살해된 고(故) 지익주 씨 사건과 관련해 필요한 영사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피해자 유족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사건 진상 규명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과 관련해 "현재 필리핀 사법부에서 관련 항소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유족 측 입장에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영사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사진=뉴스핌DB] |
앞서 숨진 지씨의 미망인 최경진 씨는 박 장관에게 직접 우체국 등기로 편지를 발송해 고통을 호소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씨는 편지에서 "제 남편은 집에서 현직 경찰들에게 납치돼 경찰청 내 주차장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뒤 화장터에서 소각됐고 유골마저도 찾을 수 없도록 화장실 변기에 버려졌다"면서 "이는 극악무도하고 천인공노할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저는 남편을 찾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증거를 수집했고 급기야 탐정까지 고용했다"면서 "이후 신변 위협으로 숨어 지내며 재판을 준비했고 범인들의 거짓말을 들으면서 지옥 같은 세월을 보냈는데 이는 뼈를 깎고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필리핀 당국의 사건 대처에 대해서도 "재판 초기 범인들은 15명 정도였고 이 중에는 NBI(국가수사청) 고위직 간부도 있었지만 대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범인은 5명으로 축소됐다"고 비판했다.
축소된 범인 5명마저도 2명은 국가 증인으로 채택돼 석방되거나 지병으로 숨졌고, 계속된 재판에서 나머지 3명 중 2명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주범으로 지목된 전직 경찰 고위 간부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판은 끝났지만, 사건은 은폐되고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며 "남편의 억울함과 저의 아픔을 풀어주기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박 장관에게 호소했다.
아울러 "사건 진상 규명과 보상이 꼭 필요한 이유는 한국민들이 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할 방패막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최씨의 남편인 한인 사업가 지익주 씨는 지난 2016년 10월 18일 앙헬레스 자택에서 필리핀 경찰들에게 납치돼 살해됐다. 이 사건은 당시 한인사회뿐 아니라 많은 필리핀인을 충격에 빠뜨렸다.
현직 경찰이 무고한 한인을 납치한 뒤 살해했을 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잔인하고 치밀한 범행 수법이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사건 발생 12일 뒤에는 신원불상자가 남편이 피살된 사실을 모르는 미망인 최씨를 상대로 몸값을 요구해 500만페소(약 1억1900만원)를 뜯어내기도 했다.
사건 수사를 맡은 필리핀 경찰청 납치수사국(AKG)은 총 14명의 용의자를 가려내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이 중 5명만 인질강도·살인·차량 절도 등의 혐의로 최종 기소했다.
이후 약 5년 8개월간 84차례에 걸쳐 심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경찰청 마약단속국(PNP AIDG) 팀원인 로이 빌레가스는 국가 증인으로 채택돼 2019년 1월에 석방됐다. 화장장 소유주인 헤라르도 산티아고는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다.
이후 필리핀 법원은 올해 6월 6일 열린 1심 판결에서 마약단속국 소속 전 경찰관인 산타 이사벨과 NBI 정보원을 지낸 제리 옴랑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이 주모자로 지목한 이사벨의 상관이자 마약단속국 팀장을 지낸 라파엘 둠라오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현지 언론에서도 판결 및 사건 실체 규명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법정에 나온 최씨는 둠라오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충격을 받고 혼절했고 주변의 한인들은 안타까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필리핀 검찰은 지난달 4일 항소를 제기했다.
2012년 이후 필리핀에서 발생한 한인 살해 사건은 총 57건에 사망자는 63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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